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노랑·빨강 잎사귀… 왜 가을에 색깔이 변할까?

입력 : 2025.11.04 03:30

단풍의 원리

/그래픽=진봉기
/그래픽=진봉기
가을이 깊어가면서 단풍도 절정을 맞았어요.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초록빛 잎을 버리고 노랗고 빨간 옷으로 갈아입어요.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잎은 마치 불타는 불꽃 같고, 바람이 불면 낙엽이 살랑살랑 춤을 추며 길 위로 내려앉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을 '색의 계절'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왜 잎들은 가을이 될 때마다 자신의 색을 바꾸는 것일까요? 사실 계절의 빛깔을 바꾸는 것은 잎사귀 속에 있는 수많은 원소들이랍니다. 오늘은 원소들이 어떻게 잎을 알록달록 빛으로 물들이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엽록소가 초록색 빛 반사해요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엽록소'라는 물질 때문이에요. 엽록소는 식물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햇빛을 이용해 식물의 양분인 포도당을 만드는 광합성을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엽록소 속에는 빛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모으는 특별한 구조가 숨어 있어요. 바로 '포르피린'이라는 고리 모양의 분자 구조예요. 이 고리는 네 개의 질소(N) 원자가 모여 만든 테두리처럼 생겼어요. 질소 원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고리를 만들고, 그 한가운데 마그네슘(Mg) 원자를 둘러싸고 있답니다. 이렇게 마그네슘이 중심에 들어 있는 포르피린 고리 구조가 엽록소의 핵심이에요.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구조 덕분이에요.

엽록소 속 마그네슘은 빛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햇빛이 잎에 닿으면, 마그네슘은 햇빛 속 에너지를 흡수하죠.

재미있는 점은 마그네슘이 햇빛 속 에너지를 골라서 흡수한다는 것이에요. 햇빛에는 여러 가지 색의 빛이 섞여 있어요. 빛의 색이 다른 이유는 파장, 즉 빛이 진동하는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죠. 엽록소 속 마그네슘은 이 중에서 빨간빛과 파란빛의 파장을 잘 흡수해 에너지로 사용하고, 초록빛의 파장은 거의 흡수하지 않아요. 그래서 초록빛이 반사돼 우리 눈에는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거예요. 즉, 엽록소가 남긴 빛이 숲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거랍니다.


가을이 되면 마그네슘이 떠나요

그렇다면 왜 가을에는 잎의 색이 바뀔까요? 가을이 되면 낮이 짧아지고 햇빛이 약해집니다. 식물은 더 이상 여름처럼 활발하게 광합성을 하지 못하지요. 이때 나뭇잎 속에서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요. 햇빛의 에너지를 이용하던 엽록소가 점점 활동을 멈추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식물은 엽록소를 분해해 안에 있던 영양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하죠. 이 과정에서 엽록소 안 마그네슘도 서서히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 결과 마그네슘이 없는 엽록소는 더 이상 빛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초록색이 점점 사라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동안 초록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다른 색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나무마다 잎 속에 있는 색소의 종류와 양이 다르고, 여기에 햇빛의 세기, 기온, 흙의 성질 같은 환경 조건이 더해지면서 가을에 나무들이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게 되는 거예요.

먼저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예요. 이 색소는 여름부터 잎 속에 있었지만, 강한 초록색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어요. 하지만 엽록소 활동이 줄어들면서 노란빛·주황빛을 내는 이 색소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은행나무나 버드나무의 노란 잎이 바로 이 색소 덕분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빛 색소가 있어요. 이 색소는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가을에 새로 만들어지는 색소예요. 낮에는 어느 정도 햇빛을 받고, 밤에 기온이 뚝 떨어지는 조건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같은 나무라도 환경에 따라 잎 색깔이 달라질 수 있는데요.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큰 산속의 단풍나무나 감나무가 도시의 나무보다 더 붉게 물든답니다.

하지만 모든 나무가 잎의 색을 바꾸는 건 아니에요. 상록수라고 불리는 소나무, 동백나무와 같은 나무들은 가을과 겨울에도 초록빛 잎을 간직하죠. 이러한 상록수의 잎 속에는 엽록소를 보호하는 단백질과 효소가 있어서 가을이 되어도 엽록소가 거의 분해되지 않아요. 그래서 겨울에도 햇빛을 받아 천천히 광합성을 이어갈 수 있죠.


원소가 만드는 생명의 질서

흥미롭게도, 엽록소에 들어 있는 포르피린 고리는 식물만의 특별한 구조가 아니에요. 우리 몸속 피에도 이와 아주 비슷한 구조가 숨어 있답니다.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은 엽록소와 거의 같은 모양의 고리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고리의 중심에 들어 있는 원소가 다르다는 점이에요. 엽록소의 중심에는 마그네슘이, 헤모글로빈의 중심에는 '철(Fe)'이 들어 있어요.

이 고리 구조는 빛과 에너지를 다루는 데 뛰어난 원자 배열을 가지고 있어서, 식물에서는 햇빛의 에너지를 이용해 영양분을 만들고, 동물에서는 산소를 운반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요. 결국 가을 낙엽의 색과 사람의 피 색깔은 모두 원소들이 만든 생명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답니다.

가을 숲을 물들이는 다양한 색엔 마그네슘, 질소 같은 작은 원소들의 움직임이 숨어 있답니다. 초록빛 잎사귀도, 붉은 단풍도, 결국 모두 원소들이 그린 하나의 계절 그림이에요. 올가을 낙엽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원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이동훈 작가·'대충 봐도 머리에 남는 어린이 원소 상식' 저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