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하는 고전] "평화로운 시기에 위기 대비하라" 임진왜란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
입력 : 2025.11.03 03:30
징비록
류성룡 지음|이민수 옮김|출판사 을유문화사|가격 1만6000원
류성룡은 책의 첫머리에서 자신을 먼저 반성합니다. "보잘것없는 내가 나라를 지키는 큰 임무를 맡고도 위기를 막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요? 책의 제목에 답이 있습니다. '징비(懲毖)'란 유교 경전인 '시경'에 나오는 말로, '지난 잘못을 징계해 다시는 그런 화를 당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이에요. 이 책은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반성과 다짐의 기록인 것입니다.
조선은 건국 이후 200년 동안 큰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류성룡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군사 제도를 고치고 방어 시설을 보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요. 그러자 격한 반대 의견에 부딪혔습니다. 류성룡과 친분이 있던 한 선비는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태평한 시대에 성을 쌓다니 무슨 당치 않은 일이오? 성 쌓는다고 백성을 괴롭히니 참으로 답답하오."
류성룡은 당시 명장으로 손꼽히던 신립에게 물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나면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 신립이 답했습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 류성룡은 왜군이 조총을 갖고 있으니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다고 경계하지만, 신립은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니까?"라며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조선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은 밤마다 신음했고, 아침이면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길가에 즐비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은 도적이 되었고, 마을엔 전염병까지 돌아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징비록'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순신은 한산도에 운주당이라는 집을 짓고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전투를 연구했습니다. 병사들의 의견도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수와 병사가 군사 지식에 밝아졌고, 작전은 늘 토론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장수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든 이의 지혜와 힘을 모아 싸운 것입니다.
류성룡이 '징비록'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합니다. "평화로울 때 전쟁에 대비하고 힘을 길러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종전(전쟁이 끝남) 상태가 아니라 정전(전쟁이 잠시 멈춤) 상태입니다. 언제든 다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 잘못을 잊지 않고 미리 대비하는 마음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합니다. '징비록'은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준비하는 지혜를 알려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