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 신화] 헤라와 유노는 같은 신… 성격은 조금 다르대요
입력 : 2025.11.03 03:30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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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우스(아래)는 헤라의 사제 이오의 미모에 반해 몰래 이오를 만났습니다. 그 현장에 헤라(왼쪽 위)가 나타나자, 제우스가 이오를 암소(가운데)로 변신시키는 상황을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왜 똑같은 신인데 이름이 두 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리스와 로마, 서로 다른 두 문명이 같은 신을 각자의 이름으로 부른 것이에요. 두 나라의 신화는 이야기의 뼈대는 거의 같지만, 신들의 성격과 가치관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제우스와 헤라, 그리고 로마에서 유피테르와 유노로 불린 두 신의 이야기를 통해, 이 두 신화가 어떻게 닮았고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결혼 통해 세상 다스린 제우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여러 면에서 주목받는 신입니다. 특히 그는 여러 여성과의 사랑 이야기를 남겨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하지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무슨 신이 이러냐?"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는 헤라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여섯 번 결혼했거든요.
그가 여러 번 결혼한 것은 사실 단순히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제우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아들입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태어나자, 그들이 훗날 자신을 권력에서 밀어낼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삼켜 버렸어요. 하지만 제우스만은 어머니가 몰래 빼돌려 무사했지요. 성인이 된 제우스는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때 지혜의 여신 메티스가 제우스를 도와 승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제우스는 메티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아내로 맞이했어요. 이것이 첫 번째 결혼이었어요.
권력을 잡은 제우스는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해 법과 질서의 여신 테미스와 결혼했습니다. 이후엔 에우리노메와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에우리'는 넓다는 뜻이고, '노메'는 법률을 의미합니다. 법과 질서를 더 넓게 펼치겠다는 것이죠.
이후 제우스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대지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와 결혼했지요. 네 번째 결혼 이후, 제우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다섯 번째 결혼을 해 아홉 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이들이 바로 음악·문학·예술·학문을 주관하는 뮤즈 여신들이에요. 여섯 번째 아내는 레토였어요. 그녀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낳았고, 그들이 세상을 밤낮으로 환하게 비추며 제우스의 통치를 만천하에 알렸어요.
여섯 번이나 결혼하다니,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제우스의 결혼 이야기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세상이 질서 있고 풍요롭게 돌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신화로 표현한 것이지요.
제우스의 7번째 결혼 상대 헤라
이제 제우스는 자신의 통치를 완성할 또 한 번의 결혼을 생각합니다. 바로 가정의 신 헤라와의 결혼이었어요. 가정이 바로 서면 인간과 신들의 세계도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제우스는 망설임 없이 헤라에게 다가갔지만 헤라는 질색하며 제우스를 피했습니다. 여섯 번이나 결혼한 천하의 바람둥이를 남편으로 맞이할 수는 없었거든요. 하지만 제우스는 포기하지 않았지요. 먹구름을 모으고 천둥·번개를 치게 한 뒤, 폭우가 쏟아지게 했어요. 그리고 뻐꾸기로 변신하여 비를 흠뻑 맞고 오들오들 떨면서 헤라에게 다가갔지요. 헤라는 가여운 마음이 들어 뻐꾸기를 품에 안았어요. 그러자 제우스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간절하게 구애했습니다.
헤라도 더는 거절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조건을 내세웠지요. 결혼식을 성대하게 열어 모든 존재가 둘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자신만이 정식 아내임을 선포하며, 제우스의 왕좌 곁에 앉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제우스는 헤라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때부터 헤라가 제우스의 유일한 아내로 공인되었답니다. 물론 제우스는 그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확장한다는 명목으로 종종 바람을 피웠지만, 헤라는 조용히 참고만 있지 않았어요. 결혼과 가정의 신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사랑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 겁니다.
그리스 신화 받아들인 로마
기원전 3세기쯤부터 로마는 지중해의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그리스와 교류하고 또 충돌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리스를 정복하게 되었지요.
이때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신화를 접하며 감탄했어요.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웠던 것도 큰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담긴 삶의 지혜에 놀랐던 겁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세상을 지배하려면 어떤 전략과 지혜가 필요한지가 신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지요. 그래서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의 내용이 아주 비슷하게 되었고, 이를 묶어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리스 신화 속에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과 이상을 담아내면서 로마 신화를 발전시켰죠. 예를 들어, 제우스와 헤라는 로마 신화에서 유피테르와 유노가 되지만 이름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두 신은 로마 신화에서 훨씬 품위 있고 진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요. 헤라가 제우스의 외도에 분노하며 질투하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유노는 그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대처하는 '여왕(Regina)'의 품격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유노는 '유노 레기나'라는 호칭으로도 불리지요. 또한 유노는 헤라와 달리 출산을 돕는 역할도 하는데, 그래서 새 생명에게 빛을 준다는 뜻의 '유노 루키나(Lucina)'라고도 불립니다.
이런 점에 주목해 두 신화의 차이를 비교해 읽어나간다면, '그리스·로마 신화'를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