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고사성어] 맑은 가을날씨 뜻하는 말? 과거엔 전쟁 공포 표현하는 말이었죠
입력 : 2025.10.28 03:30
천고마비
천고마비라는 말은 당(唐)나라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시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그의 친구 소미도가 돌궐을 정벌하기 위해 북벌 전쟁에 참전할 때 써 준 시였죠. 시에는 춥고 낯선 북방 땅에서 꼭 승리하고 돌아오라는 격려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가을 하늘은 높고 변방의 말은 살이 찐다[秋高塞馬肥]'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이것이 '추고마비(秋高馬肥)'였다가 다시 '천고마비'로 바뀌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중국 국경 너머 북쪽에는 시대에 따라 흉노, 돌궐, 선비, 여진 등 강성한 여러 유목 민족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가을이면 무성하게 자라난 풀을 말들에게 풍족히 먹였습니다.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양껏 먹여 살을 찌웠던 것이죠. 그리고 추운 겨울이 되면 유목 민족은 영양분을 잔뜩 비축한 말을 타고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과 전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푸른 하늘 아래서 말들이 풀을 뜯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것을 짐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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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박상훈
결국 답은 군대를 키우는 데 있었습니다. 군사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부터였습니다. 무제는 품종이 뛰어난 말을 들여오고, 화살촉과 무기를 새로 만들었지요. 이때부터 중국과 유목 민족의 전투력이 조금씩 비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천고마비는 원래 가을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말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막강한 유목 민족과 치른 전쟁에서 겪은 공포가 스며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뜻은 사라지고, 청명한 가을을 대표하는 말이 됐지요.
가을을 나타내는 다른 고사성어도 있습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과 '만산홍엽(滿山紅葉)'입니다. 등화가친은 등불[燈火]을 가까이 할 만하다[可親]는 뜻으로, 서늘한 가을밤에 따뜻한 등불을 가까이 놓고 책 읽기 좋다는 말입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지요. 만산홍엽은 온 산[滿山]에 붉게 물든 나뭇잎[紅葉]이란 뜻으로,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말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붉게 물드는 단풍을 보며 책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