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술 마시면 외국어 늘까?" 상상을 현실로 만든 실험들

입력 : 2025.10.28 03:30

이그노벨상

'이그노벨상'이라는 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든 과학상이에요. 영어 단어 '불명예스러운(ignoble)'과 '노벨(Nobel)'이 합쳐진 말이지요. 엉뚱하고 웃기지만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연구를 발굴해 상을 줘요. 1991년 만들어져 매년 노벨상 발표 약 1~2주 전에 발표된답니다.

매년 정해진 시상 분야가 있는 노벨상과 달리, 이그노벨상은 분야가 계속 바뀌어요. 어떤 해엔 '공중보건상'이 있지만 다음 해엔 없고, 새로운 상이 생기기도 해요. 과거엔 벌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신체 부위는 어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몸 25곳을 벌에 쏘이며 실험한 연구자에게는 '곤충학상'을 줬고, 헛기침을 계속 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의 폭언을 억제하는 기법을 연구한 과학자에게는 '평화상'을 시상했답니다.

지난달엔 10개 부문에서 올해의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며 큰 화제가 됐는데요. 오늘은 어떤 독특한 연구들이 상을 받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재미있는 과학] "술 마시면 외국어 늘까?" 상상을 현실로 만든 실험들
얼룩무늬로 위장한 소, 파리 덜 꼬인다

'소의 몸에 얼룩무늬를 칠하면 파리가 덜 달라붙는다.' 바로 올해 이그노벨상 '생물학상'을 수상한 연구 결과입니다. 소의 몸에 파리가 자주 붙는 것은 농부들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특히 흡혈파리는 소의 피를 빨아먹을 뿐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기도 해 큰 피해를 주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한 농부가 연구를 의뢰했고, 일본 고지마 도모키 박사 연구팀이 실험에 나섰습니다.

연구팀은 기존의 연구를 찾아보던 중, 흡혈파리가 얼룩무늬에 잘 다가가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견했어요. 이 내용을 토대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연구팀은 검은 소 여섯 마리를 세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했어요. 첫째 그룹은 흰색 수성 페인트로 얼룩말처럼 줄무늬를 칠한 소, 둘째는 검은색 페인트로 칠한 소, 셋째는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일반 소였어요. 이렇게 세 그룹을 방목한 뒤, 30분 간격으로 영상을 찍어 파리가 몇 마리 붙는지 관찰했어요.

결과는 놀라웠어요.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소와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소에게는 평균 110마리 넘는 파리가 붙었지만, 얼룩무늬 소에게는 절반 정도인 55마리만 달라붙었어요. 얼룩무늬 소는 파리를 쫓기 위해 꼬리를 흔드는 횟수도 훨씬 적었답니다.

그렇다면 얼룩무늬는 어떻게 흡혈 파리를 막을 수 있었던 걸까요? 연구팀은 파리의 눈이 교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파리는 수천 개의 렌즈가 모여 있는 '겹눈'으로 세상을 봐요. 마치 모자이크처럼 여러 조각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지요. 또 파리는 냄새나 움직임뿐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진동하는 '편광된 빛'을 감지해서 사냥감을 찾아요. 소의 검은 털은 빛을 강하게 반사해 파리들이 잘 찾아오지만, 얼룩무늬는 얘기가 달라져요. 검은 털에서 반사되는 편광 방향과 흰색 털에서 반사되는 빛의 방향이 서로 달라져 빛이 뒤섞이고 어지럽게 반사돼요. 결국 파리는 얼룩무늬 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잘 접근하지 못하는 거예요. 연구에 따르면 줄무늬 간격이 5㎝ 이하일 때 효과가 더 크다고 해요.

약간의 음주, 외국어 실력 늘려준다

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작 중엔 다른 흥미로운 연구가 많답니다. 올해 '평화상'은 술을 마시면 외국어 실력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영국 배스대 연구팀에 돌아갔는데요. 연구팀은 네덜란드어를 배운 독일인 5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어요.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은 맥주를 마시게 하고 다른 그룹은 무알코올 음료를 마시게 했지요. 그 결과 맥주를 마신 사람들이 네덜란드어를 더 유창하게 했다고 해요.

연구팀은 술을 마시면서 생긴 심리적 변화에 주목했어요. 술이 불안감을 줄이고 자신감을 높여줬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연구팀은 술을 많이 마시면 오히려 언어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어요.

이탈리아 연구팀은 무지개도마뱀이 치즈 피자를 특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영양학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들이 상을 받은 건 단순히 도마뱀의 피자 취향을 알아냈기 때문은 아니에요. 연구팀은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이 야생동물의 식단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답니다.

스스로 똥 분석하는 '스마트 변기'

한국인 연구자들도 이그노벨상을 받은 적이 있답니다. 2023년엔 당시 스탠퍼드대 의대 소속이었던 박승민 박사가 공중보건상을 받았어요. 연구 주제는 '인간의 항문 모양과 배설물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변기 시스템'입니다.

똥은 과학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연구 자료예요.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이죠. 박승민 박사는 이러한 점에 주목해 '스마트 변기'를 떠올렸다고 해요. 이 변기에는 센서와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사람이 앉으면 자동으로 대변과 소변을 분석해요. 색깔, 양, 점도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분석해 당뇨병이나 장 질환, 심지어 암 같은 질병의 신호를 미리 알아챌 수 있지요.

변기 사용자를 구별하기 위해 '항문 인식 시스템'도 함께 만들었어요. 항문 주름의 패턴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른데, 얼굴 인식보다 더 정확하다고 해요. 덕분에 변기 사용자를 구별해 각자의 건강 데이터를 따로 기록할 수 있었죠. 그래서 이 연구는 "진지하면서도 웃음을 주는 과학 연구"라는 이그노벨상의 정신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답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