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검열과 통제 속 쓰인 문학, 변혁의 불씨 됐죠

입력 : 2025.10.27 03:30

데카브리스트의 난

역사는 거대한 물결로 굽이치며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파동을 일으키는 사건을 '혁명'이라고 부르죠. 역사적으로 사회 구조와 사상, 정치와 경제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중요한 혁명들이 있었는데요.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과 맞서 싸우며 근대적인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미국의 독립 혁명이 있습니다. 독립전쟁(1775~1783)을 거쳐 완성됐지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에요. 절대 왕정 아래에서 시민들은 왕과 귀족의 특권, 불평등한 신분 제도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도 거대한 혁명이 일어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새로운 사상인 공산주의를 토대로 국가를 세운 사건입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대전을 거친 뒤 세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으로 갈라졌지요.

그러나 혁명은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90여 년 전인 1825년 12월, 당시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귀족 출신 젊은 러시아 장교들이 황제에게 반발하며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봉기를 일으킨 것이죠. 그들은 농노제를 없애고, 권력을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제의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면서 봉기는 단 하루 만에 끝나고 말았지만, 이 젊은 장교들의 용기는 훗날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데카브리스트의 난'입니다. 러시아어로 '데카브리'는 12월을, '데카브리스트'는 '12월의 사람들'을 뜻하지요. 최근 이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는데요. 바로 '데카브리'(11월 30일까지·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입니다.

뮤지컬 '데카브리'의 한 장면. 한때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미하일(가운데)과 그의 친구이자 동료 알렉세이(오른쪽)가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에요.
뮤지컬 '데카브리'의 한 장면. 한때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미하일(가운데)과 그의 친구이자 동료 알렉세이(오른쪽)가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에요.
미하일이 아카키의 책상에서 자신이 과거에 쓴 책 '말뚝'을 발견하는 장면. 그는 아카키의 행동을 눈감아주려고 합니다.
미하일이 아카키의 책상에서 자신이 과거에 쓴 책 '말뚝'을 발견하는 장면. 그는 아카키의 행동을 눈감아주려고 합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묘사한 그림. 상트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란군과 진압군이 맞섰습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묘사한 그림. 상트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란군과 진압군이 맞섰습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초상. 그는 러시아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시달리면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작품들을 남겼지요.
/쇼노트·위키피디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초상. 그는 러시아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시달리면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작품들을 남겼지요. /쇼노트·위키피디아
이상을 꿈꾸던 청년에서 검열관으로

젊은 장교들의 반란 이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권력을 잃게 될까 봐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3부'라는 이름의 비밀경찰기관을 만들어 정치와 언론, 심지어는 문학 작품까지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했어요.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검열을 받아야 했고,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은 금지됐습니다.

뮤지컬 '데카브리'는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실패한 뒤인 183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야기의 중심에는 황제 직속의 비밀경찰국에서 일하는 세 청년, 미하일과 알렉세이, 그리고 아카키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억압됐던 이 시기, 자신이 맡은 일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미하일과 알렉세이는 비밀경찰국의 검열관입니다. 책이나 신문에 황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없는지 살펴보는 일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미하일은 사무실 말단 직원 아카키의 책상 위에서 '말뚝'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합니다. 그 책은 미하일 자신이 젊은 시절에 익명으로 쓴 것이었는데, 체제를 비판하는 글이었어요. 미하일은 지금은 검열관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한때는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고민했던 이상주의자였습니다.

아카키는 정부가 금지한 책들을 몰래 읽는 비밀 독서 모임을 이끌고 있었는데, 미하일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그의 행동을 눈감아 주려 합니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료인 알렉세이가 그 사실을 눈치채고, '말뚝'이 점점 더 인기 서적이 되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죠. 결국 자신의 정체까지 의심받는 위기의 순간, 미하일은 자신이 썼던 작품 '말뚝'의 유통을 금지시킵니다.

뮤지컬은 90분 동안 진행되는데, 그 사이에 21곡의 노래가 밀도 있게 이어집니다. 키보드와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풍성한 음악이 이야기의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여 주지요.

검열에 시달렸던 러시아 대문호들

실제로 니콜라이 1세 시대의 검열은 많은 러시아 작가에게 큰 시련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이반 투르게네프 같은 위대한 러시아 문학가들이 검열에 시달렸어요. 특히 데카브리스트들과 교류했던 푸시킨은 니콜라이 1세가 직접 그의 작품들을 검열했을 만큼 감시 대상 1호로 분류되었죠. 그는 작품마다 수정과 삭제 명령을 받았고,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제의 권위를 은유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출간을 금지당했지요.

도스토옙스키 역시 검열과 탄압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는 1846년 러시아 하층민의 고통과 빈곤, 인간 존엄 문제를 묘사한 '가난한 사람들'로 데뷔를 했는데요. 반체제 서클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하고, 총살당할 위기까지 겪지요. 결국 시베리아로 보내지며 고초를 당한 이후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위대한 문학 작품을 남깁니다.

하지만 니콜라이 1세의 검열과 억압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두려워했던 '데카브리스트 정신'과 자유를 노래한 문학 작품들은 러시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의 생각을 서서히 바꿔 놓았어요. 결국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 해방령을 내리게 됩니다. 데카브리스트들이 꿈꾸던 농노제 폐지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는 정치적 자유가 실현되지 않은 불완전한 개혁이었고, 이후 혁명의 불꽃은 점점 커졌습니다. 1905년엔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거리로 나오며 제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17년, 제2차 혁명이 일어나며 마침내 황제의 왕좌가 무너지고 얼마 후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되지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