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조선 시대 어린이들이 쓴 '동몽시' 과거의 순수함 되돌아보게 하죠
입력 : 2025.10.27 03:30
내 생애 첫 번째 시
우리 옛 시 대부분은 한문으로 쓴 한시(漢詩)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어린이가 쓴 한시를 동몽시(童蒙詩)라 일컬었습니다. 동몽은 나이가 어려 지식이 짧고 깊이 깨닫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선비가 죽은 뒤 펴내는 문집에도 어린 시절에 쓴 글은 넣지 않았습니다. 유치하다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린 나이에 쓴 시 가운데도 빼어난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이 책은 한문학자인 저자가 선비 140인이 어린 시절에 지은 시 200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한 것입니다. 과거 선비들은 어린 시절 어떤 시를 썼을까요?
'천성은 본디 맷돌 사이에서 왔으나, 둥글고 빛나서 동산에 뜬 달과 똑같네.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운 진미보다는 못해도, 머리 벗겨지고 이 빠진 노인에게는 제일 좋구나.'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이 다섯 살 때 썼다는 시입니다. 심오한 표현이지만, 주제는 바로 두부입니다. 한 노인이 어린 김시습에게 두부를 주자 그 고마움을 시로 표현했다고 하지요.
다음은 조선 중기의 문장가 정창주가 일곱 살 때 쓴 시입니다. '밤도 아닌데 봉우리마다 달이 떴고, 봄도 아닌데 나무마다 꽃이 피었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오로지 검은 점 하나! 날 저물어 돌아가는 성 위의 까마귀 한 마리.' 눈이 내린 풍경을 묘사한 작품으로, 일곱 살 어린이의 감성과 표현력이 놀랍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눈이 봉우리와 나뭇가지에 쌓여 있고,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가운데 까마귀 한 마리만이 검은 점처럼 보이는 대비를 그린 것이지요.
다산 정약용은 열 살 이전에 쓴 시만으로도 문집을 낼 만큼 일찍부터 시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다음은 그가 일곱 살 때 쓴, 두 구절만 남은 시입니다. '작은 산은 어떻게 큰 산을 가렸을까? 멀고 가까운 거리가 달라서라네.' 사물을 바라보는 거리감의 차이에서 원근법의 이치를 깨달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진실한 기쁨과 진실한 슬픔만이 진실한 시를 만들어낸다. 어린이야말로 거짓되지 않고 시를 쓸 수 있다." 조선 영조 대의 학자 이덕무가 남긴 말입니다. 세상 경험이 쌓이며 거짓과 허세에 물들기 쉬운 어른과 달리, 아이는 마음속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무지개'에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세상을 호기심과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어른이 배워야 할 어린이의 마음입니다.
옛 동몽시와 오늘날의 동시를 함께 읽다 보면, 어른은 자신이 잃은 순수함과 감수성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의 스승입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쓴 글은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을 일깨우는 스승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