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꼭 읽어야 하는 고전] 무인도에 갇혀 본능만 남은 소년들… 인간 내면의 어두운 폭력성 경고하죠
입력 : 2025.10.23 03:30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지음|이덕형 옮김|출판사 문예출판사|가격 8000원
이야기의 무대는 남태평양의 어느 한 무인도입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어른 없이 소년들만 남은 이곳에선 끝없는 자유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소년들은 금세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어 나갑니다. 금발의 잘생긴 소년 '랠프'가 대장으로 뽑히고, 뚱뚱하고 겁이 많지만 이성적인 소년 '피기'는 랠프에게 여러 조언을 하며 규칙과 질서를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질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성가대장이었던 '잭'은 사냥의 쾌감에 사로잡혀 원초적 본능을 드러냅니다. 그는 구조를 위한 봉화보다 당장의 배고픔을 채워줄 고기가 더 중요하다고 외치며 무리를 이끌지요. 질서와 규칙은 점점 무시되고, 소년들의 사회는 이성을 상징하는 랠프와 본능을 상징하는 잭으로 갈라집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피기는 절망적으로 외칩니다. "대체 우리가 뭐지? 사람이야? 아니면 동물이야? 그것도 아니면 야만인이야?"
결정적인 사건은 섬에 정체불명의 짐승이 등장하며 일어납니다. 어느 날 어린 소년들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짐승을 보았다며 두려움에 떨지요. 잭은 이 공포를 이용해 소년들을 선동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합니다. 그는 사냥한 멧돼지의 머리를 창에 꿰어 제사를 지내고, 소년들은 얼굴에 피를 칠하고 춤을 추며 점차 이성을 잃어갑니다. 또 다른 소년 '사이먼'은 짐승이 사실 낙하산에 걸린 어른의 시체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광기에 휩싸인 소년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사이먼을 짐승으로 착각하고 무참히 살해하고 말지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소년들 사이의 질서는 완전히 붕괴됩니다. 논리적인 피기는 잔인하게 살해당하며, 랠프는 이제 대장이 아니라 사냥감으로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랠프를 잡으려고 섬 전체에 불을 지른 소년들 앞에 연기를 본 해군 장교가 나타납니다. 어른의 등장과 함께 아이들은 비로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울음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그들을 구해 준 장교 역시 거대한 군함을 타고 또 다른 전쟁을 치르러 가는 길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를 남깁니다. 소년들의 섬은 결국 어른들이 벌이는 거대한 전쟁의 축소판이었던 셈입니다.
저자 윌리엄 골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진짜 짐승'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폭력성과 야만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인간의 문명은 어두운 본성이라는 살얼음판 위에 세워진 듯해서, 우리의 공동체는 낙원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