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 미술관 산책] '미술관들의 미술관'… 인류가 남긴 예술의 발자국 담겼죠

입력 : 2025.10.20 03:3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여러분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을 읽어보셨나요?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화려한 도시 뉴욕 한가운데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하는 경비원이에요. 자신이 의지하던 친형이 세상을 떠난 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 이 미술관에서 예술품을 지키는 일을 택했지요.

이 책 덕분에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뉴욕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미술관이 많은데, 브링리는 왜 하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택했을까요? 오늘은 미술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를 매료시키는 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게요.

미국 뉴욕시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멀리서도 웅장함을 느낄 수 있어요.
미국 뉴욕시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멀리서도 웅장함을 느낄 수 있어요.
메인 출입구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그레이트 홀'이에요. 각 전시실로 이어지는 공간이자, 카페와 안내소 등이 있는 곳이지요.
메인 출입구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그레이트 홀'이에요. 각 전시실로 이어지는 공간이자, 카페와 안내소 등이 있는 곳이지요.
시민이 주도해 만든 '미술 성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은 뉴욕의 대표 랜드마크입니다. 현지인들은 친근하게 '더 멧(The Met)'이라고 부르지요. 메트가 있는 센트럴파크 동쪽 5번가 거리에는 많은 미술관이 있는데요. 이곳은 메트를 비롯해 구겐하임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 유대인 박물관 등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이 밀집해 있어 '뮤지엄 마일(Museum Mile)'이라고도 합니다. 메트는 이 뮤지엄 마일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인데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하얀 건물은 멀리서 봐도 그 자태가 웅장합니다.

메트는 1870년 시민 주도로 설립된 공공 미술관입니다. 당시 미국은 정치·경제적으로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처졌다는 인식이 있었죠. 이때 미국의 외교관이자 연설자였던 존 제이가 1866년 파리에서 열린 미국 독립 기념일 축하 행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미국에도 유럽처럼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국립 미술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이 연설에 많은 미국 사람이 공감하면서 미술관 설립이 추진됐답니다. 메트는 설립 초기엔 임대 건물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다가 1880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규모를 점차 확대해 나갔어요. 이후 메트는 시민들의 후원과 기부, 구입을 통해 전 세계 주요 예술품들을 빠르게 수집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지요.

오늘날 메트는 150만점 이상의 소장품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미술부터 중세 유럽, 근현대 미국, 아시아 미술과 현대미술까지 5000년의 인류 역사를 아우르지요. 상설 전시실들이 수없이 이어져 있어 하루 만에 이곳을 다 둘러본다는 건 불가능하답니다. 꼼꼼하게 살펴보려면 일주일, 아니 한 달이 걸릴지도 몰라요.

미술관에 들어서면 환하고 넓은 중앙 홀이 나옵니다. 이곳에 안내소와 아트숍, 카페, 티켓 판매소 등이 있고, 지하층에는 강연장과 도서관 등 관람객 편의 시설이 있어요. 전시장은 1층부터 3층까지 걸쳐 있답니다.

전시장을 살펴볼까요? 먼저 1층에서는 고대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펼쳐집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 중세 유럽의 성화, 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메리카의 전통 미술품까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예술을 만날 수 있지요. 이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은 고대 이집트관이에요. 거대한 유리 천장 아래, 실제 크기로 복원된 '덴두르 신전'이 웅장하게 서 있답니다.

2층은 르네상스와 19세기 유럽의 화려한 회화,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죠. 이곳에 이슬람 미술관과 아시아관도 있답니다. 한국관도 이곳에 있는데요. 빗살무늬토기, 고려청자, 그리고 현대 작가의 작품까지 우리 미술의 오랜 역사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3층은 특별 기획전이 열리는 공간으로, 특정 주제를 다룬 소규모 전시가 열립니다.

고대 이집트관에 전시된 '덴두르 신전'.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기리기 위해 기원전 10년쯤 지어진 신전으로, 1960년대 댐 건설로 수몰될 뻔했다가 지금 자리로 옮겨졌답니다.
고대 이집트관에 전시된 '덴두르 신전'.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기리기 위해 기원전 10년쯤 지어진 신전으로, 1960년대 댐 건설로 수몰될 뻔했다가 지금 자리로 옮겨졌답니다.
반 고흐의 작품 '삼나무가 있는 밀밭'. 고흐 특유의 역동적인 붓 터치가 잘 드러나지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위키피디아
반 고흐의 작품 '삼나무가 있는 밀밭'. 고흐 특유의 역동적인 붓 터치가 잘 드러나지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위키피디아
반 고흐에서 잭슨 폴록까지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은 '유럽 회화' 전시실입니다. 렘브란트, 반 고흐, 폴 고갱,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 등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답니다. 특히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1889) 앞에는 늘 많은 관람객으로 붐빕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생의 끝자락에 남긴 대표작 중 하나로, 남프랑스의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절에 그렸어요. 구불구불한 사이프러스 나무와 푸른 하늘, 활기찬 밀밭을 역동적인 붓 터치로 표현한 고흐 그림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밀밭은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음과 불멸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런 대조적인 이미지가 고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잘 드러내는 것 같지요.

고흐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도 만날 수 있어요. 고흐는 자화상을 여러 점 그렸는데요, 단순히 외모를 묘사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어요. 이 자화상에 그려진 고흐의 표정에선 고뇌와 열정을 동시에 엿볼 수 있지요.

이 밖에도 렘브란트의 고단한 내면을 담은 '자화상'(1660), 피카소의 초기작 '맹인의 식사'(1903), 잭슨 폴록의 '가을 리듬(30번)'(1950) 등 르네상스 회화부터 인상주의, 미국 추상표현주의까지 다양한 사조의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요.

세계인이 찾는 문화 명소

메트는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해서도 관람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2019년부터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파사드 커미션'은 미술관 밖에 작품을 설치해 지나가는 누구나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했죠. 작년엔 우리나라의 설치미술가 이불이 이곳에서 조각 4점을 선보이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메트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예술이 한자리에 공존합니다. 그래서 메트를 걷다 보면 인류가 살아온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매년 5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이은화 미술평론가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