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임금도 즐겨 먹던 명절 대표 음식… 광해군 때는 '잡채 판서'도 있었대요

입력 : 2025.09.30 03:30

잡채

곧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입니다.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즐거운 명절이긴 하지만,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게 큰 부담이 되긴 했어요. 다행히 요즘에는 명절 간편식이 나오면서 전이나 잡채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죠. 그런데 명절 대표 음식 잡채가 원래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추석을 앞두고, 오늘은 잡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잡채의 사전적 정의는 '채소, 버섯, 고기 등을 볶아 삶은 당면과 함께 무친 음식'이에요. 하지만 '잡채(雜菜)'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여러 가지 채소를 섞은 요리'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처음 잡채는 채소와 고기로 만든 음식이었고, 나중에 당면이 들어가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 거예요.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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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요리책인 '음식디미방'에는 잡채에 대해 이런 설명이 나와 있어요. 버섯, 오이, 무, 도라지 같은 채소를 볶고 무친 뒤, 삶은 꿩고기를 넣어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지요. 또 꿩을 삶은 육수에 된장과 밀가루를 풀어 소스를 만들어 얹었다고 해요. 당시 잡채는 이렇게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해서 쉽게 만들 수 없는 고급 요리로 여겨졌답니다.

잡채는 왕도 즐겨 먹던 음식이었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광해군 때 관리 이충이 잡채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재밌는 기록이 있어요. 그는 겨울에도 지하에 온실을 만들어 채소를 길렀고, 그 채소로 반찬을 지어 왕에게 올렸습니다. 이 덕분에 큰 총애를 받아 높은 벼슬까지 올랐지요. 사람들은 그를 '잡채 판서'라고 불렀는데, 사실은 비판이 섞인 별명이었어요. 반찬으로 왕의 마음을 얻어 높은 벼슬을 얻었다고 비난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당면은 언제부터 잡채에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20세기에 발간된 요리책들에 당면이 들어간 잡채 레시피가 소개되는 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잡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당면 공장이 생기면서 당면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변화를 두고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잡채는 빠르게 당면이 들어간 요리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이 시기의 잡채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어요. 당면이 들어가긴 했지만, 채소와 비율이 비슷해서 당면은 여러 재료 중 하나였던 거예요.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당면의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오늘날처럼 당면이 주재료가 된 잡채가 만들어졌습니다. 전쟁 이후엔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쉽지 않았지요. 게다가 당면은 대량 조리가 편리하고 먹었을 때 금방 배가 부른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당면 비율이 늘어나면서 양념도 바뀌었는데, 간장과 설탕을 더해 당면에 어울리는 맛을 내게 된 것이지요.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