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고사성어] 약자끼리 뭉칠까, 강자 편에 설까?… 두 갈래 외교 전략 뜻해요

입력 : 2025.09.23 03:30

합종연횡

[뉴스 고사성어] 약자끼리 뭉칠까, 강자 편에 설까?… 두 갈래 외교 전략 뜻해요
얼마 전 북한·중국·러시아 정상이 66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두 천안문 망루에 오른 것이지요. 세 정상의 만남을 두고 미국을 겨냥해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미·일 외교 장관도 회담을 열기로 했죠. 여러 나라가 각자의 셈법에 따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옛날 중국 전국시대의 외교 전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합종연횡은 글자 그대로 세로[縱]로 합치고[合] 가로[橫]로 연결한다[連]는 뜻입니다. 과거 중국엔 진(秦)·위(魏)·한(韓)·초(楚)·제(齊)·조(趙)·연(燕)이라는 일곱 나라가 있었는데, 이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했습니다. 그중 가장 서쪽에 있던 진나라는 빠르게 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반면 동쪽 여섯 나라의 힘은 비슷했지요.

이때 뛰어난 책사였던 소진(蘇秦)이 등장해 말했습니다. 약자끼리 힘을 합쳐야 진나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여섯 나라(육국)는 남북으로 세력을 합쳐 동맹을 맺었는데, 이것을 '합종책'이라고 합니다. 여섯 나라가 힘을 합치자 진나라는 동쪽 관문인 함곡관을 쉽게 넘지 못했고, 소진은 무려 여섯 나라에서 재상으로 임명될 만큼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진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책사 장의(張儀)는 진나라에 가서 "육국과 한 나라씩 개별적으로 화친을 맺어 내분을 유도한 후 하나씩 공격해야 한다"는 계책을 내었지요. 이것을 장의의 연횡책이라고 합니다. 그러곤 장의는 육국을 찾아다니며 약자끼리 연합하는 것보다 진나라와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위나라부터 연나라까지 여섯 나라의 동맹은 차례로 깨졌습니다.

소진과 장의는 각국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국이 되었지요. 정상적인 외교술은 물론이고 모함과 이간질, 암살 등 온갖 비열한 방법도 동원됐습니다. 소진과 장의 같은 외교 전문가를 종횡가(縱橫家)라고 부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스승에게 배운 동문 사이였지만 정반대의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합종은 강대국 진에 맞서기 위한 약소국들의 동맹이었고, 연횡은 진이 약소국들의 동맹을 깨려는 외교술이었습니다. 약자끼리 힘을 합칠 것인지, 아니면 강자 옆에 설 것인지의 선택이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이지요. 실제로 초나라 회왕은 장의의 거짓말에 속아 진나라에 끌려가 죽었고, 나라는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합종연횡은 약 2300년 전에 벌어졌던 치열한 각축전이지만 오늘날에도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나라들이 이익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가리켜 지금도 합종연횡, 또는 비슷한 표현인 이합집산(離合集散)이라고 부르지요.


채미현 박사·'상식 밖의 고사성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