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독성 강해 사약 원료로 썼던 꽃… '해리 포터' 시리즈에도 등장해요
입력 : 2025.09.22 03:30
투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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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구꽃은 길이가 3cm 정도로 작은 편이에요. 위쪽 꽃잎이 로마 시대 검투사의 ‘투구’처럼 생겼어요. /김민철 기자
투구꽃은 꽃 모양이 정말 특이합니다. 한 송이 길이가 3cm 정도 될까 말까 합니다. 꽃을 보면 왜 투구꽃이라 하는지 금방 짐작할 수 있습니다. 꽃잎 위쪽이 투구 또는 고깔처럼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한 꽃대에 10여 송이까지 달려 있는 모습이 병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보초를 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투구꽃은 제주를 제외한 전국 산에서 비교적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해발 400m 이상 계곡과 능선에서 산다고 하니, 웬만한 등산로에선 볼 수 있습니다. 8월 말 피기 시작해 9~10월 절정을 이루기 때문에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투구꽃은 얘깃거리도 많은 꽃입니다. 우선 투구꽃 뿌리의 독성이 식물계 최강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옛날엔 사약의 재료로도 쓰였습니다. 뿌리에 있는 아코니틴이라는 성분이 몸속에 들어가면 내장 출혈, 신경 마비, 호흡 곤란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뿌리가 독성이 가장 강하지만, 꽃잎이나 잎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한방에서는 투구꽃 뿌리를 희석시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회복하게 하는 약재로 쓰기도 합니다.
이 꽃은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식물입니다. 물론 걸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투구꽃에는 큼직한 덩이뿌리가 있고, 그 옆으로 곁뿌리들이 나 있습니다. 투구꽃의 덩이뿌리는 해마다 썩는데요. 이듬해엔 옆으로 뻗은 곁뿌리 중 한 곳에서 덩이뿌리가 생기고 그곳에서 새싹이 나오는 방식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한 장소에만 있으면 필요한 양분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는 지혜를 발휘하는 셈이지요. 이 때문에 투구꽃 뿌리를 약으로 쓰기 위해 캐려면 6~7월에 캐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너무 일찍 캐면 알이 없고, 8월부터는 꽃을 피우느라 영양분이 빠져나가 알이 부실해진다는 것입니다.
투구꽃의 영문 이름은 monk's hood입니다. 투구꽃이 서양 사람들 눈에는 수도사가 쓰는 '후드'처럼 보인 모양입니다. 이 꽃은 해리 포터 시리즈에도 등장하지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스네이프 교수가 해리에게 마법약을 설명할 때 투구꽃과 바꽃(Wolf's bane)의 차이를 물은 다음 같은 꽃이라고 알려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투구꽃은 늑대 인간이 늑대의 본성을 누르고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약을 만드는 재료로 나오지요.
10여 년 전쯤 나온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각시투구꽃은 1m까지 자라는 투구꽃에 비해 크기가 20㎝ 정도로 작아서 '각시'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북한이나 중국 쪽 백두산에 가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