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신통한 힘 가진 '반인반귀' 왕자… 황룡사 9층 탑 지었대요

입력 : 2025.09.18 03:30

'반인반귀' 비형랑과 신라의 골품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루미. 인간인 어머니와 악령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정체를 숨긴 채 걸그룹 ‘헌트릭스’로 활동하지요. /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루미. 인간인 어머니와 악령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정체를 숨긴 채 걸그룹 ‘헌트릭스’로 활동하지요. /넷플릭스
(※이 글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과 앨범 차트 '빌보드200'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한국 문화의 여러 요소가 담긴 이 영화가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K컬처'가 유례없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인기 절정의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사실은 악령을 퇴치하는 퇴마사이며, 그중 주인공 '루미'는 인간인 어머니와 악령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귀(半人半鬼)지만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이것은 작품의 주제이자 삽입곡 '골든'의 가사인 '더 이상 숨지 말고 너답게 빛나라'는 메시지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죠.

'반인반귀'라는 존재가 우리 문화에서 생소한 것 아닐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나오긴 나옵니다. 어디에? 바로 '삼국유사'입니다. 그의 이름은 비형(鼻荊) 또는 비형랑이라고 하는데 '랑(郎)'이란 남성에게 붙이는 당시의 호칭이었습니다.



귀족들에게 쫓겨난 임금 진지왕

신라 역사에서 국력을 가장 크게 키운 군주로 24대 진흥왕(재위 540~576)을 들 수 있습니다. 한강 유역부터 강원도와 함경남도 일부까지 영토를 크게 늘려 신라가 삼국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진흥왕의 차남으로 그 뒤를 이어 25대 임금이 된 군주가 누군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로 진지왕(재위 576~579)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사가 기록된 대표적인 두 역사서가 고려 시대에 쓰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사기'가 공식 역사서인 반면 '유사'는 서민의 풍속과 문화 등 '사기'에 없는 내용을 많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지왕이 즉위한 지 3년 1개월 만에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폐위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은 '유사'에만 실려 있어요.

이에 대해서는 진지왕이 원래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나 있었지만 진흥왕 때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거칠부의 지원으로 조카 백정(훗날의 진평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579년 거칠부가 죽은 뒤 귀족 세력의 반발로 쫓겨났다는 것이죠. 신라 임금이 폐위됐다는 기록은 아주 드뭅니다. 진지왕의 뒤를 이어 26대 왕이 된 인물이 진흥왕의 장손이자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재위 579~632)이었습니다.



귀신이 된 임금이 비형랑을 낳았다는데…

바로 이 진지왕과 관련된 기록이 '비형랑' 이야기입니다. 진지왕이 임금 자리에 있을 때 평민 중 도화랑이라는 미녀가 있었는데 임금이 궁으로 불러 구애했어요. 그러나 아뿔싸, 도화랑은 유부녀였고 "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으니 차라리 거리에서 죽여 달라"며 거절했죠. 진지왕은 넌지시 "남편이 없으면 가능하겠는가" 물었고 도화랑에게서 "그러면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여기까지 스토리의 진행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 얘기처럼 진지왕이 도화랑의 남편을 죽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의외로 진지왕은 쿨하게 물러났습니다. 얼마 지나 진지왕은 폐위를 당했고 곧바로 세상을 떠났어요. 3년 뒤에 도화랑의 남편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이미 죽은 진지왕의 귀신이 도화랑 앞에 나타나 '남편이 없으면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습니다. 왕이 그 집에 7일을 머물렀는데 오색 구름이 집을 덮었고, 도화랑은 임신했습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비형이었어요. 그야말로 사람과 귀신의 혼혈인 '반인반귀'였죠.

진평왕이 그를 궁중에서 길러 15세 때 집사 벼슬을 줬습니다. 비형은 매일 월성(신라 궁궐) 담을 넘어 도깨비들을 거느리고 놀았다고 합니다. 이를 들은 진평왕은 뜻밖에도 그 도깨비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해 국가 재정을 절약하려는 정책을 씁니다. 월성 북쪽 신원사 근처에 다리를 놓으라고 지시한 것이죠. 하룻밤 새 돌다리가 건설됐고 '귀교'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진평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도깨비 중에 조정에 나와 정치를 도울 자가 있는가?" 비형이 길달이라는 도깨비를 추천했는데 충직하게 업무를 수행했고 흥륜사 남쪽에 문을 만들어 '길달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길달은 인간 세상 일에 싫증이 났는지 여우로 변해 달아났는데 비형이 부하 도깨비들을 시켜 잡아 죽였다고 합니다. 이후 신라 사람들은 '날고 뛰는 온갖 귀신들아, 비형랑이 이 집에 있으니 꺼지거라'라는 글을 적어 부적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비형의 정체는 '성골보다 신분 낮은 진골'?

그런데,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얘길까요? 일각에서는 '도깨비'를 당시 신라와 교역하던 중동 출신의 외국인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귀교를 만든 도깨비들을 밀교(대승불교의 한 분야) 승려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형의 정체를 "실제로 진지왕의 아들이었던 김용춘이었다"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김기흥 논문 '도화녀·비형랑 설화의 역사적 진실'). 진지왕이 폐위되고 나서 바로 죽은 것이 아니라 3년 정도 더 살다 도화랑에게서 아들을 봤다는 것이죠. 그런데 김용춘은 바로 신라 29대 임금인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이 되는 김춘추의 아버지였습니다.

신라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에서 최고 등급은 왕족인 성골, 그다음은 진골이었습니다. 그 아래는 하급 귀족에 해당하는 6두품, 5두품, 4두품이 있습니다. 훗날 지식인 계층으로 떠오른 6두품은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하게 되죠.

그런데 성골 출신의 신라 왕은 28대 진덕여왕에서 끝나고, 태종무열왕부터는 진골 출신이 임금이 됩니다. 신분이 낮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던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은 성골 신분이 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비형랑 설화에 나온 것처럼 토목·건축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아 실제로 황룡사 9층 탑의 건설 책임을 맡았고, 마침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숨기지 말자'는 듯 비(非)성골 출신으로서 당당히 활약한 결과 아들 대에 이르러 왕위에 오르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