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집안일의 혁명' 가져온 발명품… 여성 사회적 역할·청결 기준 바꿔

입력 : 2025.09.16 03:30

세탁기

최근 미국에서 한 시장조사 기관이 가장 만족도 높은 가전제품 브랜드를 조사했는데, 한국 기업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한국산 세탁기가 큰 인기였다고 합니다. 세탁기는 '집안일의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생활을 크게 바꾼 발명품이지요. 그럼 세탁기가 나오기 전에는 어떻게 빨래를 했을까요?

세탁기 발명 이전에도 인류는 단순히 물에 옷을 담그는 것만으로는 때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우선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모습이 바로 막대기 같은 빨래 방망이로 두드리거나, 큰 통에 빨래를 넣고 발로 밟는 방식입니다. 또는 울퉁불퉁한 빨래판에 비벼 빨래하는 방법도 사용됐지요.

국내 최초 세탁기인 백조세탁기. 이 세탁기가 출시된 이후엔 세탁소 이름을 ‘백조세탁소’라고 짓는 경우도 많았지요.
/국가유산청
국내 최초 세탁기인 백조세탁기. 이 세탁기가 출시된 이후엔 세탁소 이름을 ‘백조세탁소’라고 짓는 경우도 많았지요. /국가유산청
'기계식' 세탁기가 등장한 것은 18세기쯤으로 추정됩니다. 이때부터 빨래통을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해요. 19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실린더식 세탁기'가 발명됐는데, 원통형 금속통 안에 옷을 넣고 손잡이를 돌려 통을 회전시키는 방식이었죠. 직접 손으로 돌려야 했기에 오늘날보단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의 집안일을 크게 줄여주었지요.

20세기 들어서는 드디어 전기 모터를 단 세탁기가 발명됐는데, 나무나 쇠로 만든 원통을 전기로 돌리는 구조였어요. 우리나라에선 1969년 금성사(현 LG)에서 처음으로 세탁기를 만들어 판매했는데요. 위에서 빨래를 넣는 형태였고, 세탁통과 탈수통이 따로 있는 구조였죠. '백조'라는 이름의 이 세탁기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답니다.

오늘날 세탁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의 제품이 사용됩니다. 세탁조가 옆으로 누워 있고 앞쪽에 문이 달려 있는 드럼 세탁기와, 세탁조가 세로로 길게 서 있고 위쪽에 문이 달려 있는 통돌이 세탁기죠.

세탁기의 발명은 단순히 집안일을 편리하게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삶과 사회적 역할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세탁기가 가사 노동 시간을 줄여주면서 여성이 집 밖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하루 종일 빨래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지만, 세탁기의 등장으로 그 시간이 줄어들면서 여성이 공부하거나 직업을 갖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거지요. 실제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많은 나라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점점 활발해졌습니다.

세탁기가 새로운 청결 기준을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옷이 조금 더럽거나 구겨져 있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지만, 세탁기가 보급된 뒤에는 사람들이 더 자주 옷을 갈아입고 세탁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 것이죠. 그만큼 세탁기는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은 물건이랍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