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나빠져만 가는 기억력, 뇌 단백질 조절해 되살린대요

입력 : 2025.09.16 03:30

뇌와 기억력

분명 어제 본 내용인데 기억이 안 나는 경험, 한 번쯤 있을 거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도 금방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지죠.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우리 머릿속에 기억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조절해 뇌 기능을 높이는 방법까지 찾아냈다고 해요. 나빠져만 가는 기억력, 어떻게 좋아지게 할 수 있는 걸까요?

기억 저장 담당하는 '해마'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정보는 뇌로 전달돼요. 이때 정보를 전달하는 주인공이 바로 신경세포(뉴런)예요. 신경세포는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의 뇌에는 이런 세포가 약 1000억개 들어 있습니다. 이 세포들은 서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먼저 신경세포들이 서로 만나는 접점을 '시냅스'라고 합니다. 특정 경험과 관련된 시냅스가 자주 사용되면 연결이 점점 더 튼튼해지죠. 반대로 거의 쓰이지 않으면 약해지거나 끊어지지요.

이 과정의 중심에는 해마가 있습니다. 해마는 뇌의 깊은 곳에 있는 기관으로, 바다 동물 해마(Sea horse)와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해마는 뇌 속에서 들어온 정보를 잠시 저장한 뒤, "이건 잠깐만 기억하면 돼" 혹은 "오래 간직해야 해"라고 판단합니다. 즉,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을 분류하는 사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중 반복되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경험은 해마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뇌의 겉 부분인 대뇌피질로 옮겨 장기 기억으로 저장합니다. 사람은 보통 새로운 내용을 들은 뒤 한 달 정도 지나면 그중 80% 정도를 잊어버린다고 해요. 해마가 들어온 기억을 잠시 저장했다가, "이건 오래 기억할 필요가 없겠다"라고 판단하는 거죠. 그러면 그 경험과 관련된 시냅스 연결이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 잊히는 거예요.

어릴 때 외운 구구단이 지금도 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같이 반복한 경험이 시냅스 연결을 강화했고, 해마가 이를 중요한 기억으로 분류해 장기 기억으로 남긴 것이지요.

[재미있는 과학] 나빠져만 가는 기억력, 뇌 단백질 조절해 되살린대요
'뇌 노화'의 주범, FTL1 단백질

나이가 들면 해마 속 시냅스 연결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요. 이렇게 되면 장기 기억 등을 분류하는 해마 기능 역시 약해진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지고, 기억력도 조금씩 감퇴하는 거예요.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진은 뇌 속에서 기억을 방해하는 단백질을 찾아냈다고 해요. 'FTL1'이라는 단백질인데, 해마에 이 단백질이 많아지면 시냅스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우리 뇌가 어떤 정보를 오랫동안 기억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나이에 따라 뇌 속 단백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봤습니다. 젊은 쥐는 길이나 물건의 위치를 잘 기억했지만, 나이 든 쥐는 물건 위치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눈에 띄는 점은 나이 든 쥐의 뇌에 FTL1 단백질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었지요. 연구진은 이 단백질 때문에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연구진은 정말 FTL1이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젊은 쥐의 뇌에서 이 단백질의 양을 인위적으로 늘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젊은 쥐의 뇌에서 시냅스가 약화되고,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기능도 손상되었어요. 그 결과 뇌의 구조와 활동이 약해졌습니다.

반대로 연구진이 나이 든 쥐의 해마에서 FTL1 단백질을 줄여 보았을 때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약해졌던 시냅스가 다시 살아나고, 뇌의 활동이 회복된 거예요. 단 하나의 단백질 조절만으로도 노화로 인한 기억력 저하 현상을 상당 부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거죠.

기존의 노화 연구에선 유전자와 여러 단백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억력을 억제한다고 알려졌어요. 하지만 연구진은 뇌 노화의 핵심적인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밝혀낸 겁니다.

알츠하이머 치료 가능성 보였죠

이번 연구는 특정 단백질을 조절해 노화된 뇌에서 기억력을 회복시킬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FTL1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해마 신경세포 속에 철분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다고 해요. 문제는 이 철분이 뇌 속 산소와 반응하면서 만드는 활성산소가 해마의 신경세포를 서서히 손상시킨다는 점이에요. 그 결과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기 어렵고, 기억력뿐 아니라 언어 능력, 판단력 같은 인지 기능도 떨어지게 됩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의 약 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형태인데요. 이런 뇌 손상 과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합니다. 현재 사용되는 약물은 진행 속도를 늦추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앞으로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앞으로 FTL1을 정확히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뇌 손상이 진행되는 것을 늦추는 것을 넘어 뇌 기능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FTL1

원래는 뇌 속에서 철분을 관리하는 단백질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지요. 하지만 이 단백질이 너무 많아지면서 생기는 활성산소 때문에 뇌의 시냅스 연결이 약해지고,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습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