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비바람에 해진 널판 위, 작가는 어머니의 청춘을 그렸죠
입력 : 2025.09.15 03:30
한국 현대미술 하이라이트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을 위해 파견 나갔던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얼마 전 비자 문제로 구금됐다가 다행히 풀려나 한국으로 귀환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이민 단속 정책을 둘러싼 그간 문제점들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요.
합법적인 자격을 얻든, 그렇지 않든 고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서 지내는 것은 쉽지 않아요. 특히 여러 복잡한 사정으로 고국을 떠난 이주자들은 다른 나라에 정착하기까지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미술가 김수자(1957~)는 어느 국가도 받아주지 않는 이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위 예술을 기획했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이 '보따리 트럭'입니다.
김수자 작가를 비롯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한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 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예요. 그럼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몇 가지 살펴볼까요?
합법적인 자격을 얻든, 그렇지 않든 고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에서 지내는 것은 쉽지 않아요. 특히 여러 복잡한 사정으로 고국을 떠난 이주자들은 다른 나라에 정착하기까지 불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미술가 김수자(1957~)는 어느 국가도 받아주지 않는 이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위 예술을 기획했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이 '보따리 트럭'입니다.
김수자 작가를 비롯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한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 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예요. 그럼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몇 가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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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자의 작품 '보따리 트럭-이민자들'(2007)의 한 장면. 트럭을 타고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구역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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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익중의 작품 '삼라만상'(1984~2014). 작은 조각의 캔버스들이 연결돼 거대한 작품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품1>은 행위 예술 '보따리 트럭-이민자들'을 기록한 영상의 한 장면이에요. 김수자 작가는 2007년에 짐 보따리를 잔뜩 실은 트럭을 타고 프랑스 파리 시내를 통과했어요. 트럭이 지나간 지역은 중국,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지요.
천으로 묶은 보따리에는 옷이나 생활용품뿐 아니라, 그 위에 걸터앉은 여인의 삶과 기억까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내 나라 내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없게 된, 상처로 가득한 과거와 현실이겠지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계속 달려야 하는 이사용 트럭은 어느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여인의 운명을 말해줍니다. 뿔뿔이 흩어져 집 없이 옮겨 다니는 이방인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죠.
강익중(1960~) 작가는 "나라 사이에는 장벽이 있을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장벽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실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거대한 작품을 구상했는데요. <작품2>는 그가 1984년부터 2014년까지 30년에 걸쳐, 3인치(약 7cm) 크기의 작은 나무판 그림을 1만여 점 모은 것입니다. 각각의 판은 모양과 내용이 모두 달라요. 다양한 나라의 문자도 보이고, 장난감이나 그릇, 작은 도구 등 일상용품들이 붙여 있기도 하죠. 함께 진열해 놓으니 색과 무늬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네요. 이 작품의 제목은 '삼라만상'. 불교 용어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은 하나의 큰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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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환기의 점묘화 '산울림19-II-73#307'(1973). 캔버스에 오일. 미세한 점들이 겹치고 퍼져 나가는 모습이 마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인상을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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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남의 작품 '어머니3-요조숙녀'(1993). 나무에 채색. 널판을 이어 붙여 하나의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입혔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환기재단 환기미술관
김환기(1913~1974) 작가는 '점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라고 불립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마치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처럼 작은 점들이 가득 찍혀 있어요. 사람도 어쩌면 우주 속에 떠 있는 수많은 점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면서 늘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뉴욕에 살던 1970년대에는 그리운 마음을 파란 점으로 하나하나 찍어 표현했어요. 실제로 그의 일기에는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찍어가는 점. 어쩌면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일까"라는 글귀도 남아 있습니다.
'산울림'<작품3>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그린 거예요. 마치 캔버스를 한 올 한 올 물들여 가듯 무수히 많은 점이 화면에 찍혀 있습니다. 미세한 점들이 반복되면서 둥근 형태를 만들고, 그 퍼져 나가는 모습이 마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인상을 주네요. 마음속에서 외치는 한 사람의 목소리는 멀리 들리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 소리가 차곡차곡 쌓여 메아리처럼 큰 울림을 이룬다면, 고향 하늘 저 끝까지 다다르지 않을까요.
<작품4>는 윤석남(1939~) 작가가 널판에 그린, 어머니의 젊었을 적 모습이에요. 윤석남은 자신의 어머니를 실제 모델 삼아, 열아홉 살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여자로서 어머니의 인생을 6점의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중 '어머니3-요조숙녀'는 어머니가 젊은 시절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던, 가장 행복했던 때를 보여줍니다.
윤석남 작가는 캔버스가 아닌 버려진 나무 널판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너와집(나무판으로 기와를 대신한 집) 지붕에 얹어져 5년쯤 비바람을 견뎌낸 널판인데, 마르고 젖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나무다운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나무 향기도 나지 않고, 낡고 쩍쩍 갈라져서 쓸모없어진 것이었지요. 이제는 그 누구도 이것을 나무라고 부를 리 없을 정도로요.
한때는 꿈을 가진 소녀였고 수줍은 아가씨였던 어머니의 인생도 이와 비슷했을까요. 널빤지를 보다가 애처로운 생각이 든 작가는 그 위에 얼굴을 그려주기로 해요. 작가는 판자에 붙어 있던 흙먼지를 털고 닦아내면서 "너희는 어디에서 왔니?" 하고 물어보았고, 그러자 널판들이 저마다 사연을 들려주는 것 같았대요. 이렇게 해서 폐목은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이웃들의 모습으로 바뀌었어요. 생명을 다한 판자들이 땔감으로 던져지는 대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랍니다. 마치 "이 나무에도 아직 이야기가 있다"는 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