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오물 가득했던 애물단지 도심 하천… 지금은 관광객 몰리는 명소 됐어요

입력 : 2025.09.09 03:30

청계천

올해로 청계천<사진>이 복원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청계천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자연스럽게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했습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위쪽을 북촌, 청계천 양안을 중촌, 아래 남산 쪽을 남촌이라고 했는데요. 북촌에는 양반과 고위 관료, 중촌에는 중인과 상인, 남촌에는 가난한 선비가 주로 살았지요. 지역마다 생활과 문화가 달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답니다.

청계천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한양의 지형 때문에 도성의 하수가 모여 동쪽 끝 중랑천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갔습니다. 평소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다가, 비가 오면 갑자기 불어나는 건천이었지요. 그래서 큰비가 내릴 때마다 주변이 자주 잠겼고, 물길을 다스리는 일이 꼭 필요했어요. 조선 태종 때부터 청계천 관리는 나라의 중요한 일이었죠.

박성원 기자
박성원 기자
6·25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청계천 둑길에 판잣집을 빽빽하게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계천 주변은 오·폐수 냄새가 가득하고 환경도 열악해 슬럼가가 되었지요.

정부는 도시 개발을 이유로 1958년부터 하천을 덮고 그 위에 도로를 만드는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복개 공사가 끝난 이후엔 그 위로 대규모 고가도로가 세워졌습니다. 서울 동서를 한 번에 잇는 길이라서 서울의 대동맥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청계천을 덮은 구조물과 청계고가도로는 큰 사회문제로 떠오릅니다. 지하 하천에 오염 물질이 쌓이면서 메탄가스 등 유독가스가 차올라 폭발 위험이 생겼고, 청계고가도로 역시 노후화로 인해 붕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생긴 거예요.

무엇보다 시민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강북 도심을 가로지르던 고가도로는 더 이상 발전의 상징이 아니라, 도시 풍경을 해치는 흉물로 보였지요.

200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청계천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하며 서울시장에 당선됐지요. 청계고가도로와 복개 구조물을 철거하고, 청계천을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이 추진된 것입니다. 이 계획은 시작한 지 불과 2년 3개월 만에 완성돼 지금의 청계천이 생겨났답니다.

오늘날 청계천은 매일 약 12만t(톤)의 한강 물과 지하수를 인위적으로 끌어와 흘려보내는 인공 하천입니다. 그래서 매년 유지·관리 비용이 수십억 원이라고 해요. 하지만 복원의 효과는 분명합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청계천에는 물고기 20종이 살고 있어, 자연 하천과 비슷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2급수 이상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쉬리도 터를 잡았죠. 과거 흉물로 여겨졌던 장소가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이자 작은 생태계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