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 신화] '신들의 왕' 제우스의 고향 섬… '미궁 신화' 펼쳐지는 무대

입력 : 2025.09.08 03:30

크레타섬

지구가 점점 더워지면서 세계 곳곳이 큰 피해를 입고 있어요. 이번 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염과 이상 기후가 이어지면서 많은 나라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그리스의 섬들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특히 올해는 4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크레타섬에 큰불이 났습니다. 크레타섬은 바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왕' 제우스의 고향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크레타섬에 얽힌 신화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우스를 숨겼던 섬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은 카오스(Chaos)라는 신으로부터 시작돼요. 혼란과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라는 뜻이랍니다. 그 뒤에 나타난 신이 바로 땅의 여신 가이아예요. 가이아는 스스로 자식들을 낳았는데, 하늘의 신 우라노스, 바다의 신 폰토스, 산의 신 우레아가 바로 그들이에요.

가이아가 낳은 신들이 서로 어울리며 세상은 점점 더 풍성해졌습니다. 땅과 바다가 어울리자 수많은 강과 바다가 생겨났고, 땅과 하늘이 만나자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태어났지요. 그들은 바로 티탄 신족 12명, 눈이 하나뿐인 거대한 외눈 거인 3명, 그리고 팔이 백 개나 달린 백손 거인 3명이었어요. 그런데 이 거대한 자식들에게 겁을 먹은 우라노스는, 그들을 모두 어머니인 가이아의 뱃속에 가두어 버렸답니다.

장 프랑수아 드 트로이가 그린 ‘에우로페의 납치’.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등에 업고 바다를 건너는 순간을 묘사했어요.
장 프랑수아 드 트로이가 그린 ‘에우로페의 납치’.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등에 업고 바다를 건너는 순간을 묘사했어요.
장 밥티스트 레그노가 그린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신화에서 아리아드네(왼쪽)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주면서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지요.
장 밥티스트 레그노가 그린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신화에서 아리아드네(왼쪽)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주면서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지요.
고대 그리스에서 제작된 도자기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테세우스(왼쪽)가 미궁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는 장면이에요.
고대 그리스에서 제작된 도자기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테세우스(왼쪽)가 미궁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는 장면이에요.
다이달로스(왼쪽)와 이카로스가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을 그린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위키피디아
다이달로스(왼쪽)와 이카로스가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을 그린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위키피디아
그러자 티탄 신족의 막내이자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거대한 낫을 들고 일어섰어요. 그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새롭게 권력자가 됐지요. 크로노스는 여신 레아와 부부가 되는데,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자식들을 하나하나 집어삼켜 버립니다. 자신이 우라노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이 혹시 자신을 쫓아낼까 두려웠던 것이지요.

화가 난 레아는 여섯째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를 몰래 숨기고 대신 돌덩이를 포대기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건네줍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가 바로 제우스였고, 레아가 제우스를 숨긴 곳이 크레타섬이었습니다. 훗날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약을 먹여, 뱃속에 갇혀 있던 형제자매들을 모두 토하게 하지요. 형제들과 힘을 합친 제우스는 아버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올림포스 산꼭대기에 왕궁을 세워 '신들의 왕'이 됩니다.

신들의 세계를 제패한 제우스는 지상에도 새로운 문명을 세우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페니키아의 튀로(지금의 레바논 지역)라는 항구에서 아름다운 에우로페 공주를 보게 됐지요. 제우스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황소로 변신했고, 그녀를 등에 태운 뒤 바다로 뛰어들어 자신의 고향 크레타섬으로 헤엄쳐 갔어요. 참고로 오늘날 유럽(Europe)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 에우로페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랍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미노스였어요. 훗날 미노스는 크레타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고, 에게해 전체를 지배하는 강력한 문명을 세웠습니다.

미궁 속 괴물 무찌른 테세우스

크레타와 관련된 신화의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바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예요. 이야기는 미노스 왕의 아들 안드로게오스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 날 아테네에서 큰 축제가 열렸는데, 안드로게오스가 그곳에 참가했지요. 그는 첫 번째 운동 경기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우승해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어요. 하지만 이어지는 경기에서도 계속 1등을 차지하자, 환호는 곧 질투와 분노로 변했습니다. 광기에 휩싸인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 말지요.

아들의 죽음에 격노한 미노스 왕은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를 굴복시켰습니다. 그러고는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에게 이렇게 명령했지요. "매년 처녀 일곱 명과 총각 일곱 명을 바쳐라."

그 젊은이들의 운명은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크레타에는 당시 사람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있었는데, 미노스는 그 괴물을 거대한 미궁에 가둬 두었지요.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이 궁전은 들어가면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테네 청년들은 그 안에 던져져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되고 말았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테네에 한 젊은 영웅이 나타났습니다.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고 아테네의 비극을 끝내기로 결심한 거예요. 크레타섬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뜻밖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용감한 테세우스의 모습을 보고 반해 버린 거예요. 아리아드네는 몰래 테세우스를 찾아가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실타래의 한쪽 끝을 묶고 실을 풀면서 들어가면, 나중에 되감으며 나올 수 있는 거였죠.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른 뒤 이 방법으로 복잡한 미궁을 빠져나왔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를 탈출하지요.

이카로스의 날개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미노스 왕은 격분해 공주에게 실타래의 비밀을 알려준 기술자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 속에 가두어 버렸지요. 이 미궁을 만든 사람이 바로 다이달로스였어요. 자신의 걸작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절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깃털들을 모아 밀랍으로 이어 붙여 커다란 날개를 만들고, 그것을 입고 아들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라 미궁을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아오른 이카로스는 날개의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목숨을 잃고 말지요. 여기에서 나온 '이카로스의 날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과 도전 또는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답니다.

신화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는 훗날 실제 유적 발굴로 이어졌습니다. 1878년, 크레타섬의 한 상인이 우연히 거대한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발굴을 이어갔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크노소스 궁전은 신화 속 미궁의 모델로 여겨지지요. 크레타에서 꽃핀 문명은 왕의 이름을 따 '미노스(미노아) 문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