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그린란드 14배 크기 아프리카, 왜 지도선 비슷해 보일까
입력 : 2025.08.27 03:30
세계지도
최근 아프리카연합(AU)은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제작된 세계지도의 사용 중단을 제안했습니다. 이 세계지도가 각국 정부와 학교에서 사용 중인데도 말이죠. 16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메르카토르 지도는 항해를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구의 고위도 지역을 실제보다 크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고위도 지역에 있는 그린란드보다 아프리카 대륙이 실제로 14배나 큰데도, 지도에선 두 지역이 거의 비슷한 크기로 표현돼 있어요. 아프리카연합의 주장은 단순히 땅의 크기를 바로잡자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유럽 중심으로 그려져 온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자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죠.
이처럼 세계지도를 보면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오늘은 세계지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처럼 세계지도를 보면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오늘은 세계지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 1881년 이라크에서 발견된 바빌로니아 점토 판이에요. 세계를 원반 모양으로 그린 지도로, 가운데엔 바빌론과 유프라테스강이 그려져 있습니다.
-
- ▲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던 ‘T-O 지도’ 모습을 재구성한 그림. 원에 T 자 모양 물길을 그리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 대륙을 표시했어요.
1881년 이라크에서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 판 조각이 발견됐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점토 판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로 추정됩니다.
지도에는 동심원 두 개가 그려져 있는데, 두 원 사이의 공간은 세계를 둘러싼 바다를 뜻해요. 바다 안쪽에는 현실 세계가, 바깥쪽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놓여 있습니다. 지도 중앙에는 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직사각형으로 바빌론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다"라는 인식을 볼 수 있죠.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T-O 지도'는 원 안에 T 자 물길을 그려 넣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을 나눈 그림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가 있었는데, 형식은 비슷했습니다. 위쪽엔 '에덴동산'을 표현해 놓았지요. 이 지도는 실제 지리를 정확히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대와 중세 학자들이 성경을 바탕으로 이해한 기독교적 세계를 나타낸 것이었답니다.
물길은 바다와 연결되어 원을 둘러싼 대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특이한 점은 동쪽(라틴어 'oriens')을 위로 두고 그렸다는 점인데요. 오늘날 '방향을 잡는다(orienting)'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지요. 성경에 '하나님이 동방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고 기록돼 있었기 때문에, 중세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T-O 지도에는 동쪽이 위쪽에 배치되었고, 그곳에 에덴동산이 그려진 것이지요.
12세기엔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의 지리 지식이 종합된 지도첩인 '루제로의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중국, 아프리카, 유럽까지 담은 이 지도는 지구 둘레를 거의 정확히 계산해 낼 만큼 정밀했지요. 이렇게 무역과 학문이 발달하면서 세계지도는 더욱 정교해졌고, 이후 근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 ▲ 메르카토르 도법’과 ‘이퀄 어스 도법’ 지도를 비교해 보세요. 아프리카는 그린란드보다 면적이 훨씬 넓은데,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지도에선 넓이가 비슷해 보여요.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면서 유럽인들은 아시아로 가는 육로를 더 이상 안전하게 이용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바닷길을 찾아 나서는 '대항해 시대'가 열렸지요. 콜럼버스, 바스쿠 다가마, 아메리고 베스푸치 같은 탐험가들이 대양을 건너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출발했던 지도엔 아메리카가 없었답니다.
항해가 늘어나면서 항해사들은 더 정확한 지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지요. 동시에 항해 경험과 여행 기록이 축적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과학적인 세계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 지리학자인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는 1569년 항해용 세계지도를 제작했습니다. 메르카토르 지도의 특징은 네모난 테두리 안에서 가로줄(위도선)과 세로줄(경도선)이 바둑판처럼 똑바로 만난다는 점이에요. 대항해 시대 유럽 사람들은 배의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면적을 조금 왜곡하더라도 각도를 정확히 그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도에는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둥근 지구를 평평하게 펼치다 보니, 적도 근처만 실제 크기와 비슷하게 나오고, 북쪽이나 남쪽으로 갈수록 땅이 점점 더 크게 부풀려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지도에서는 실제보다 훨씬 작은 그린란드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독특한 세계지도가 등장했습니다. 1402년 조선 태종 때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입니다. 중국에서 전해진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조선과 일본 지역을 보완해 만들었고, 여기에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포함해 130여 지명을 표시했습니다. 특히 중국과 한반도를 크게 그려 넣어,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지요.
-
- ▲ 기상청이 제작한 ‘기후변화 상황 지도’. 2015년(위쪽)과 2100년 추정치의 지역별 연평균 최고기온을 표시했어요. 붉은색일수록 기온이 높은 거예요. 특히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한 러시아와 북극권은 앞으로 기온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선일보DB·위키피디아·기상청
현대 지도에 담겨 있는 메시지
오늘날에도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진 세계지도가 여러 곳에서 사용됩니다.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도 이 지도가 실려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지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지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1970년대에 나온 피터스 도법은 면적을 실제 비율에 맞춰, 아프리카와 남반구 대륙을 제대로 된 크기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모양이 조금 찌그러져 보이는 단점이 있었지요. 최근 아프리카 연합은 메르카토르 도법 대신 2018년에 새로 만든 '이퀄 어스(Equal Earth) 도법'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는 면적을 정확하게 나타내면서도 모양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지도예요.
현대의 지도는 단순히 땅의 위치만 알려주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지도를 보면 지구의 기온이 얼마나 오르고, 북극의 빙하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실감할 수 있죠. 또 전쟁과 난민 지도를 보면 국경의 의미가 다시 보입니다. 즉, 현대의 세계지도는 "우리가 무엇을 함께 지켜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고 있는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