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유럽을 뒤흔든 거친 '해양 민족' 사후세계도 배로 간다고 믿었죠

입력 : 2025.08.26 03:30

바이킹

최근 미국과 한국이 함께 조선 산업을 살리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배의 힘'이 주목받고 있어요. 사실 인류 역사에서 배는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비용으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기엔 배만 한 게 없거든요. 세계사 속에선 배를 이용해 세력을 확장한 여러 나라가 있었는데, 오늘은 북유럽 지역에서 배를 능수능란하게 다룬 민족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바로 세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바이킹'입니다.

바이킹들이 타고 다니던 ‘롱십’을 복원한 모형. 폭이 좁고, 길이는 길쭉한 형태의 배였습니다.
/위키피디아
바이킹들이 타고 다니던 ‘롱십’을 복원한 모형. 폭이 좁고, 길이는 길쭉한 형태의 배였습니다. /위키피디아
바이킹은 지금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유럽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면서도, 무역을 하며 살았어요. 바이킹은 어릴 때부터 무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힘을 길렀다고 해요. 특히 나무로 만든 배는 중요한 장난감이었는데요. 거친 해협을 다니던 바이킹족에게 뛰어난 항해술은 필수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이 기술을 익힌 것이죠.

바이킹의 인구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늘어났지만, 이들이 살던 북유럽 지역은 겨울이 길고 추워서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어요. 그래서 더 넓은 땅과 식량을 찾기 위해 바다로 나가야 했지요. 마침 8세기 무렵, 배에 돛을 달고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바이킹은 먼바다로 모험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바이킹이 거친 바다를 건너 유럽 곳곳을 누빌 수 있었던 비결은 '롱십(longship)'이라는 특별한 배 덕분이에요. 롱십은 길이가 약 20m인 길쭉한 형태였는데요. 무게가 가벼워서 속도가 빠르고, 수심이 1m 정도 되는 얕은 강이나 하천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바이킹은 바다를 건너곤 강을 따라 마을 깊숙한 곳까지 침입해 약탈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노르웨이 오슬로 박물관에는 실제로 사용된 롱십인 '고크스타드호'가 남아 있어요.

바이킹은 단순히 약탈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땅을 차지하고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동쪽에는 '데인로'라는 바이킹 지배 지역이 생겼고, 프랑크 왕국(오늘날 프랑스 지역)의 왕은 바이킹 지도자 롤로에게 노르망디 지역을 내주기도 했지요. 이렇게 바이킹은 유럽 곳곳을 휘저으며 정치 질서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바이킹의 침입이 계속되자, 10세기쯤 프랑크 왕국의 왕권은 약해졌습니다. 왕은 기사들에게 땅을 나눠주는 대신 바이킹과 싸워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농민들도 바이킹의 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사들의 땅(장원)에 들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았고, 그 대가로 자유를 잃고 농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이킹은 중세 봉건제라는 새로운 사회 체제가 등장하는데 영향을 주었지요.

그래서 바이킹들에게 배는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니었어요. 높은 지위의 사람이 죽으면, 커다란 배를 무덤 삼아 시신과 무기, 생활 도구를 넣고 땅에 묻었죠. 죽은 이가 배를 타고 사후세계로 나아간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