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실험실서 만든 '보라색 피', 혈액형 상관없이 수혈 가능해요

입력 : 2025.08.26 03:30

인공 혈액

병원에서 수술을 하거나 응급 환자를 치료할 때 피가 필요합니다. 피가 부족하면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병원에서는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혈액을 미리 보관해 놓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헌혈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혈액이 부족하다고 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피를 직접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혈액형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수혈 가능한 '인공 혈액'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오늘은 혈액에 담긴 과학 이야기를 알아볼게요.

[재미있는 과학] 실험실서 만든 '보라색 피', 혈액형 상관없이 수혈 가능해요
항원·항체 반응으로 혈액형 구분하죠

피는 단순한 빨간 액체가 아니에요. 산소를 나르고 영양분을 공급하며, 노폐물을 빼내고 체온을 유지하는 등 수많은 일을 하는 정교한 시스템이에요. 이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산소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지요.

현재까진 피가 필요한 환자의 혈액형을 반드시 확인한 뒤, 같은 혈액형이나 조건에 맞는 피만 수혈해왔어요. 우리가 보통 쓰는 혈액형은 ABO식 혈액형으로, A형·B형·AB형·O형 네 가지가 있습니다.

혈액형이 나뉘는 기준은 바로 항원과 항체입니다. 항원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항체와 결합하는 물질을 말해요.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이지요. 항체는 특정 항원을 발견하면 곧바로 달라붙어 면역반응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우리 몸은 그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항체를 만들어 싸우지요.

우리 몸속에도 항체와 결합하는 항원이 있어요. 핏속의 적혈구 표면에 붙어 있는데, 바로 이 항원의 모양에 따라 혈액형이 결정되지요. A형은 A 항원, B형은 B 항원을 가지고 있고, AB형은 두 항원을 모두 가집니다. 반대로 O형은 항원이 전혀 없어요.

피의 액체 성분인 혈장에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ABO 항원'을 공격하는 항체가 들어 있어요. A형 혈장에는 B 항원을 공격하는 항체가, B형 혈장에는 A 항원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습니다. O형 혈장에는 두 항체가 모두 있고, AB형은 항체가 없지요.

만약 내 혈액형과 다른 혈액형의 피가 몸속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혈장 속 항체는 새로 들어온 피를 적으로 여기고 달라붙어 공격합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적혈구들이 서로 엉겨 붙어 큰 덩어리가 되고, 이 과정에서 내 적혈구도 손상돼 몸이 크게 아플 수 있습니다. 갑자기 열이 나거나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신장이 손상되기도 하며, 심하면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지요. 그래서 반드시 혈액형에 맞는 피를 수혈해야 합니다.

혈액형마다 피를 주고받을 수 있는 범위도 달라요. A형은 B 항원을 만나면 위험하기 때문에 A형이나 O형 피만 받을 수 있고, B형은 A 항원을 만나면 위험해서 B형이나 O형 피만 받을 수 있어요. O형은 항원이 전혀 없어서 누구에게나 피를 줄 수 있지만, 자신은 O형 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AB형은 항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혈액형의 피든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피는 같은 AB형에게만 줄 수 있지요.

인공 혈액, 핵심은 헤모글로빈

하지만 수혈은 혈액형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혈액형의 혈액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혈액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인공 혈액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이때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적혈구에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이에요. 헤모글로빈은 폐에 들어온 산소를 마치 '배달 트럭'처럼 온몸의 세포에 실어 나르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지요.

일본 나라현립 의과대학의 사카이 히로미치 교수 연구팀은 최근 헤모글로빈을 가공한 인공 혈액을 만들어 진짜 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랍니다. 연구진은 먼저 헌혈로 모은 혈액에서 헤모글로빈만 따로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세포막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인공 막으로 헤모글로빈을 감싸서 아주 작은 공 모양의 캡슐을 만들었어요. 그러곤 이 캡슐을 혈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용액에 섞었습니다. 혈장은 영양분을 나르고 세포들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액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피'예요. 인공 혈액은 산소를 제거한 상태로 만들어요. 산소가 있으면 혈액이 쉽게 변질돼 오래 사용할 수 없거든요.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했을 때는 붉은색, 떨어졌을 때는 보라색을 띠기 때문에 인공 혈액도 보라색이랍니다.

인공 혈액은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만 추출한 것이기 때문에 항원이 없어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수혈할 수 있지요. 덕분에 인공 혈액은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특히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인공 혈액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속 장기에서 분해되어 자연스럽게 처리된답니다. 인공 혈액을 건강한 성인에게 수혈하는 임상 시험을 한 결과 아직까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요.

'특수 혈액형'도 있어요

ABO식 혈액형 외에도 혈액형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Rh형입니다. 적혈구 표면에 있는 'Rh 인자'라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으면 Rh 양성(Rh+), 없으면 Rh 음성(Rh-)으로 불러요. 그래서 ABO식 혈액형과 합쳐 A형 Rh+, B형 Rh- 같은 식으로 총 8가지 혈액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Rh 양성이고, Rh 음성은 드물어요. 그래서 항원이 없는 인공 혈액은 특수 혈액형을 가진 환자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요.

국제수혈학회는 40여 개의 혈액형 시스템을 인정하고 있어요. 이 가운데는 아주 희귀하거나 특정 지역·가문에만 나타나는 돌연변이 혈액형도 있습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