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하늘과 물의 神 혈통 이어받아… 정치·주술 능력 강조했죠

입력 : 2025.08.21 03:30

고주몽

북한 50부작 애니메이션 '고주몽'의 한 장면. 북한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고구려 역사를 계승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
북한 50부작 애니메이션 '고주몽'의 한 장면. 북한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고구려 역사를 계승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
북한이 고구려 건국 스토리를 담은 50부작 애니메이션 '고주몽'의 제작을 마치고 TV 방영 중이라는 뉴스가 최근 나왔어요.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북한은 '고구려·발해=북한' '백제·신라=남한'이라는 도식적이고 유치한 역사관을 곧잘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북한의 정통성'을 내세우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이죠. 만약 대한민국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었더라면 '주몽' '광개토태왕' '대조영' '우씨왕후'처럼 고구려·발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오늘은 '고주몽'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박해를 딛고 나라 세운 영웅신화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고구려 건국신화 내용부터 보죠. 고구려의 초대 임금 동명성왕(기원전 58~19, 재위 기원전 37~19)의 성은 고(高)씨이며 이름은 주몽 또는 추모였습니다. 아버지는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 어머니는 하백(강의 신)의 딸 유화였습니다. 임신한 유화는 부여 금와왕의 궁궐에서 머물다가 알을 낳았는데 거기서 주몽이 태어났습니다.

주몽은 자라면서 활을 잘 쐈는데 부여 왕자들이 그를 해치려 했고, 주몽은 친구인 오이·마리·협보를 비롯해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달아났습니다. 큰 강(송화강)에 가로막히자 자라와 물고기가 다리 역할을 해 줘 건너간 뒤 졸본부여라는 땅에 이르러 왕의 사위가 됐고, 마침내 왕위를 이어받으며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가 바로 고구려의 초대 임금 동명성왕이었습니다.

이 신화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하늘과 물의 신의 혈통을 이어받은 고귀한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정치적 권위의 원천인 '하늘'을 강조하는 동시에, 농업 생산을 좌우하는 '물' 또는 '땅'의 권위를 함께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출생에서부터 장애와 난관을 겪었지만 박해를 이기면서 한 왕조를 창건하는 영웅의 서사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후대 고구려인이 조상을 신격화·영웅화했던 것이죠. 주몽은 고구려는 물론 조선 시대에도 단군과 동격으로 제사의 대상이 됐습니다. 신화 속 주몽은 기마술과 궁술에 능한 무장인 동시에 주술사(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려 재앙을 막는 사람)의 면모를 보입니다. 여기서 정치와 주술 능력을 함께 지닌 고대 왕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같은 이야기?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중국 철학사에서 비중이 큰 사상가로 후한의 왕충(27~97)이 있는데, 그의 대표 저서 '논형'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동명'이라는 인물이 알에서 태어나 활을 잘 쐈는데 핍박을 피해 도망가자 강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줬고, 마침내 나라를 세웠다고요. 그런데 여기서 동명이 세운 나라는 고구려가 아니라 '부여'로 나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부여의 '동명왕'과 고구려의 '추모왕(주몽왕)'은 다른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고구려가 부여의 '동명왕 신화'를 갖다 쓰게 되면서 동명왕과 추모왕, 부여 건국신화와 고구려 건국신화가 겹치고 혼동을 일으키게 됐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국내 역사서에는 부여 건국에 대한 기록이 따로 나오지 않지요. 신화 줄거리 자체가 스키타이·흉노·돌궐 등 유라시아 신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스토리라고도 합니다. 결국 고구려와 부여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고구려는 부여계 국가였다는 것입니다. 주몽의 아들 또는 의붓아들인 온조가 남하해서 백제를 세웠으니, 백제 역시 부여계인 것이죠. 백제는 6세기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라 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중에서 두 나라가 부여계라는 것은 부여가 현대 한국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 정사(正史) 중 하나인 '삼국지'(우리가 아는 소설 '삼국지연의'와는 다른 책입니다) 위서 동이전에서 부여의 제천의식 '영고'를 설명하는 대목 중 '음식가무(飮食歌舞)'를 즐겼다는 불멸의 네 글자가 기록돼 있습니다. '(며칠 동안 끊임없이)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춘다'는 의미입니다. K팝과 K푸드가 세계를 휩쓰는 지금 보면 과연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다물', 옛 땅을 다시 회복하다

기원전 37년 임금이 된 주몽은 졸본(흘승골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합니다. 졸본은 지금 중국 요녕(랴오닝)성에 있는 오녀산성으로 추정되는데, 가파른 암벽 위에 성이 있는 지형입니다. 서기 3년(유리왕 22년) 평지성인 국내성(지금의 중국 지안)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곳이죠. 이후 427년(장수왕 15년) 고구려는 세 번째 수도로 도읍을 옮기는데 바로 평양이었습니다.

사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동명성왕 고주몽의 연대가 확실한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기록상으로 고구려 건국 초기부터 주변 나라들을 병합하는 '정복 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36년(동명성왕 2년)에는 인근에 있는 나라 비류국의 송양왕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 비류국은 고조선을 계승한 정치 세력이고, 이 항복을 통해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삼국사기'에 기록된 용어가 '다물(多勿)'인데 비류국의 옛 땅을 다물도로 삼았다는 겁니다. 다물이란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이란 뜻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동명성왕은 기원전 33년 행인국을, 기원전 28년에는 북옥저를 병합했다고 기록됐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중국의 한(漢)나라가 설치한 '한사군' 중에서도 특히 현도군은 고조선 유민들의 끈질긴 항쟁으로 인해 내륙으로 옮기게 되고, 그 자리에 생겨난 정치 세력이 고구려였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중국 통일 왕조의 침략에 맞선 항쟁 속에서 새롭게 생겨난, 군사력이 강한 한국사의 고대 왕조'가 고구려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