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사원 둘러싼 영토 분쟁? 민족간 수백 년 갈등 담겨 있죠
입력 : 2025.08.13 03:30
태국·캄보디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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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지대에 있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이 사원 일대의 영토 소유권을 둘러싸고 양국이 오랜 대립을 이어오고 있지요. ②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 있는 사원 앙코르와트.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수리야바르만 2세가 세웠지요. ③캄보디아의 노로돔 왕. 그는 태국과 베트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와 보호 조약을 맺었지만, 결국 이는 캄보디아의 식민지화로 이어졌습니다. /로이터 뉴시스·위키피디아
이번 싸움은 단순히 국경 지역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다툰 게 아니에요. 두 나라는 오랫동안 얽히고설킨 역사가 있어요. 캄보디아는 과거 '크메르 제국'이라는 큰 나라였고, 한때 태국 땅까지 지배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힘을 키워 크메르 제국을 무너뜨렸어요. 그러니까 두 나라 모두 서로의 땅을 지배한 역사가 있는 것이죠.
게다가 20세기 초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프랑스가 태국과의 국경선을 그을 때 만든 지도와 조약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서,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싸움이 이어지고 있어요. 오늘은 과거 이 두 나라의 사이가 어땠는지, 양국의 관계사를 알아보도록 할게요.
수백 년 동안 갈등 이어져 왔죠
오늘날에는 태국이 인구도 많고 경제 규모도 훨씬 크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반대였답니다. 캄보디아의 주요 민족인 크메르족이 세운 크메르 제국(802~1431)은 캄보디아 북서부의 '시엠레아프' 근처 '앙코르'를 오랜 기간 수도로 삼고 인도차이나를 호령하는 강력한 나라였어요.
특히 '위대한 정복자'로 불리는 수리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50년) 때는 나라의 세력이 남부 베트남부터 라오스, 태국, 그리고 멀리 말레이반도까지 뻗어 있었어요. 관광지로 유명한 앙코르 와트 사원도 이 시기에 지어졌지요.
하지만 제국은 자야바르만 7세(재위 1181~1218년) 시대를 정점으로 점점 쇠퇴했어요. 당시 크메르 제국의 주 수입원은 풍부한 농업 생산량과 주변 국가에서 거둬들이는 공납이었어요. 하지만 공납을 강제로 요구하다 보니 주변 국가들의 반발이 잦아졌고, 결국 이들과의 전쟁으로 재정이 서서히 고갈됐죠.
게다가 13세기부터는 현재 태국 북부에 살던 타이족(태국의 다수 민족)이 세력을 넓혀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그리고 14세기 중엽, 이들은 차오프라야강 유역에 아유타야 왕국을 세웠습니다. 아유타야는 해상 무역에 유리한 지형과 비옥한 농지 덕분에 인구와 국력이 빠르게 늘어났어요.
이때부터 크메르족과 타이족 사이에는 기나긴 악연이 시작됐습니다. 14세기 말부터 아유타야 왕국은 크메르 제국을 침공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1431년 앙코르가 함락되면서 크메르 제국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긴 뒤부터는 '캄보디아 왕국' 시기가 시작됩니다. 프놈펜은 오늘날 캄보디아의 수도죠.
태국·베트남에 시달린 캄보디아
프놈펜 시대를 맞이한 캄보디아는 아유타야 왕국의 위협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16세기 말 아유타야 왕국은 또다시 캄보디아를 공격했고, 일부 지역을 점령하기에 이르러요. 그리고 이때부터 태국의 간섭이 시작됐죠. 아유타야 이후 톤부리 왕조(1767~1782),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짜끄리 왕조(1782~)에 이르기까지, 태국은 수백 년 동안 캄보디아의 정치에 개입합니다.
캄보디아를 힘들게 한 건 태국만이 아니었습니다. 북쪽에서 점점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던 베트남은 17세기 중반 메콩강 유역으로 진출했고, 결국엔 캄보디아를 침공해 왕을 사로잡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후 캄보디아는 매년 베트남에 공물을 바쳐야 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캄보디아 안에선 친태국파와 친베트남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기까지 했지요.
태국과 베트남, 두 이웃 나라에 시달려 온 캄보디아는 19세기 중반에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때마침 인도차이나에선 프랑스가 세력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베트남 남부(코친차이나)를 차지하고 있었고,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 있는 캄보디아를 차지하면 세력을 더 키울 수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당시 캄보디아의 노로돔 왕은 태국과 베트남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에 보호를 요청하고 1863년엔 '보호 조약'을 맺었습니다. '프랑스는 캄보디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외교만 대신해 준다'는 내용이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말죠.
프랑스가 맺은 협정 때문에 국경 분쟁 시작돼
프랑스는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든 뒤 1907년엔 태국과 국경에 관한 조약을 맺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선을 다시 설정한 것인데요. 문제는 이때 프랑스가 제작한 국경 지도였습니다. 국경 지대에 있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지도에 캄보디아 영토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양국이 조약으로 정해놓은 경계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면서 이 사원이 어느 쪽 영토에 속하는지 논란이 생긴 것이죠.
그런데 태국은 오랫동안 이 사실을 문제 삼지 않다가, 훗날 지도를 검토한 뒤 "사실 이 사원은 우리 땅에 있다"고 주장했죠. 그러고는 1950년대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분위기가 되자 사원 지역에 국경수비대를 배치해 이곳을 점령했습니다. 향후 신생국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을 대비해 선제 행동을 한 셈이죠.
1953년 캄보디아가 독립한 뒤, 캄보디아 정부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관련 국경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태국에 회담을 제의했지만 태국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1962년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주며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에 속하게 됐지만, 양국 간 분쟁은 계속됐죠.
특히 캄보디아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하는 과정에서 사원과 인접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표기했고, 이에 2008년 태국은 군대를 출동시키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2011년에는 사원 주변에서 교전이 발생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고요.
이번 양국의 충돌 또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어져 온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켜켜이 쌓인 갈등과 국민 사이의 깊은 감정의 골까지 얽혀 있는 만큼,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