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운명에 맞선 여성 예술가… 자신의 고통도 작품에 담았죠

입력 : 2025.08.04 03:30

프리다 칼로·버지니아 울프

여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낸 두 여성 예술가가 있습니다. 한 명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 드 리베라(1907~1954), 또 한 명은 영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평가되는 인물이자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쓴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입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을 그린 뮤지컬이 최근 공연 중입니다. '프리다'(9월 7일까지·NOL 유니플렉스), 그리고 '올랜도 in 버지니아'(10월 9일까지·링크아트센터)입니다.

뮤지컬 ‘프리다’ 공연 장면. 주인공 프리다(가운데)는 당당히 운명에 맞서겠다고 노래해요.
뮤지컬 ‘프리다’ 공연 장면. 주인공 프리다(가운데)는 당당히 운명에 맞서겠다고 노래해요.
프리다 칼로의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1943). 멕시코 인근에 서식하는 거미원숭이 네 마리가 그려져 있어요. 그는 멕시코 고유 동식물을 종종 그림에 넣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1943). 멕시코 인근에 서식하는 거미원숭이 네 마리가 그려져 있어요. 그는 멕시코 고유 동식물을 종종 그림에 넣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그려낸 화가

프리다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코요아칸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났어요. 프리다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녀가 태어난 '코요아칸'이 어떤 곳인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은데요. 멕시코는 1521년부터 1821년까지, 무려 300년간 스페인에 지배당했던 식민지였지요. 그래서 코요아칸 곳곳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답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 중 하나인 '라 콘치타'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아름다운 저택들은 멕시코 고유의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섞인 모습을 잘 보여주지요.

이곳은 예술가들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백 년 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 등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이곳에서 살았었지요. 오늘날에도 코요아칸의 박물관과 갤러리, 카페에는 여러 세계적 예술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흥미롭게도 소련의 지도자였던 스탈린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도 이곳으로 망명해 여생을 보냈습니다.

20세기 초, 멕시코는 아주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어요. 포르피리오 디아스라는 독재자가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일부 부자만 잘살고 대부분 국민은 가난하게 사는 불평등이 심해졌지요. 결국 사람들은 참지 못했고,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납니다. 10년 동안 이어진 이 혁명은 멕시코 사회를 크게 바꾸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코요아칸에 많은 예술가가 자리를 잡았고, 자연스레 파격적인 사상과 예술이 꽃피는 공간이 됐습니다.

프리다는 자신이 이 혁명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어요. 실제로 그가 태어난 것은 1907년이지만, 자신은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 1910년에 태어났다고 할 정도로 혁명 정신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지요.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의미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평화롭기보단 고통과 투쟁의 연속이었죠.

프리다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몸이 많이 아팠어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열여덟 살 때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척추와 골반에 심한 부상을 입었지요. 사고로 인해 그녀는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됐지요.

움직일 수 없었던 프리다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아픈 몸과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 바로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프리다는 불편한 몸으로도 평생 200점이 넘는 그림을 남겼고, 그중 자화상만 해도 60점이 넘어요.

뮤지컬 '프리다'는 마치 심야 토크쇼 무대처럼 진행돼요. 프리다가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삶을 노래로 들려주는 형식이지요.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 뒤에는 프리다가 그렸던 그림들이 영상으로 함께 비춰져요. 그녀의 인생과 예술이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느낄 수 있지요.

공연엔 네 인물이 등장해 프리다의 복잡한 삶을 함께 풀어갑니다. 먼저 프리다 자신이 있고, 그 옆엔 건강한 몸을 가진 프리다의 분신이 등장해요. 또한 프리다를 평생 따라다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의인화되어 인물로 등장하고, 그녀가 평생 사랑하고 또 미워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함께 등장하지요.

1927년 촬영된 버지니아 울프. 오늘날 그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지요.
1927년 촬영된 버지니아 울프. 오늘날 그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되지요.
1928년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 소설 ‘올랜도’의 표지.
/EMK뮤지컬컴퍼니·베르겔 재단·위키피디아
1928년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 소설 ‘올랜도’의 표지. /EMK뮤지컬컴퍼니·베르겔 재단·위키피디아
시간과 성별을 넘나드는 여정

뮤지컬 '올랜도 in 버지니아'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담은 환상 소설 '올랜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이 뮤지컬은 작가 울프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 올랜도와 함께 등장하는 2인극 형식입니다.

소설 '올랜도'의 주인공 올랜도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에요.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58~1603)부터 20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 살아가는 불멸의 존재인데요. 그동안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바뀌는 경험을 하는 신비로운 인물이지요.

올랜도는 여왕이 아끼던 귀족 청년이었습니다. 풍요로운 귀족 생활을 하던 그는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에 외교관으로 파견되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는데, 여성의 몸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했지요. 그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아이도 낳고, 책도 쓰며 작가로 활동합니다.

올랜도는 남성과 여성의 삶을 모두 경험합니다. 덕분에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것인지 깨닫게 되지요. 울프는 올랜도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으로서 맞서야 하는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1928년 출간된 이 소설은 당시 엄격하고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답니다.

뮤지컬 '올랜도'는 무대 양편에 놓인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펼쳐져요. 올랜도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하는 두 여배우는 섬세하고, 때로는 격정적인 연기로 인물의 복잡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지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