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이게 구석기 시대 그림?"… 고고학자들은 '위작' 의심했죠

입력 : 2025.07.23 03:30

암각화

최근 우리나라 울산에 있는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암각화는 아주 오래전,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암벽에 새기거나 그려 넣은 그림이에요. 여기에는 주로 동물이나 사람, 사냥 도구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지요.

하지만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랍니다. 이때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없기 때문에 암각화는 선사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문화유산이지요. 오늘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벽화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신석기부터 청동기까지 이어 그려졌죠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는 유산이에요. 그중에서도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이라는 하천변 바위에 새겨져 있어요. 바위 높이는 약 5m, 너비는 8m나 될 만큼 아주 커요. 이 큰 바위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여러 그림을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려 넣었답니다.

여기에는 고래, 사슴, 멧돼지 같은 동물 그림이 대부분이고, 사람 모습도 있어요. 그 외에도 배와 화살 같은 사냥 도구, 무슨 뜻인지 아직 알 수 없는 그림도 수십 점 발견됐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고래' 그림인데요. 예전의 울산 앞바다는 고래가 자주 나타나는 곳이었고 고래 사냥도 활발히 이뤄졌다고 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그림이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이는 그림을 새긴 기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먼저 '면 새김' 기법이라는 것이 있어요. 동물의 윤곽을 그린 다음, 안쪽을 쪼거나 긁어 표현하는 방식이죠. 주로 신석기 시대에 쓰였답니다. 반면, '선 새김' 기법은 대상의 윤곽선이나 특징을 선이나 점으로 가늘게 새기는 방법이에요. 이건 청동기 시대에 많이 사용됐다고 알려졌어요.

반구대 암각화는 이 두 기법이 모두 쓰였고, 어떤 그림은 두 기법이 섞여 있기도 해요. 그래서 학자들은 신석기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계속 그림이 추가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아마도 과거 사람들은 사냥이 잘되기를 기원하며 이 거대한 그림을 그렸을 거예요.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그림. 과거 울산 앞바다에선 고래가 자주 나타났고, 사냥도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어요.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그림. 과거 울산 앞바다에선 고래가 자주 나타났고, 사냥도 활발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어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져 있는 벽화예요. 이곳엔 들소, 사슴, 염소 등 동물 그림이 새겨져 있지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져 있는 벽화예요. 이곳엔 들소, 사슴, 염소 등 동물 그림이 새겨져 있지요.
프랑스 라스코 동굴 천장에 새겨져 있는 동물 그림. 말이나 멧돼지 같은 동물이 다양한 색깔로 표현돼 있어요.
프랑스 라스코 동굴 천장에 새겨져 있는 동물 그림. 말이나 멧돼지 같은 동물이 다양한 색깔로 표현돼 있어요.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그림으로, 동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지요.
/울산시·유네스코·브리태니커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그림으로, 동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지요. /울산시·유네스코·브리태니커
생생한 색깔로 묘사된 구석기 벽화

그보다 더 오래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벽화도 있어요. 바로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입니다. 이 벽화는 약 1만6000년 전, 구석기인들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19세기 말 이 동굴벽화가 학계에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당시 고고학자들은 이 벽화가 위조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요. '구석기인들이 이렇게 사실적이고 세련된 그림을 그릴 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구석기 시대 그림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답니다.

벽화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었을까요? 벽에는 주로 들소, 말, 사슴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어요. 놀라운 점은 이 동물들이 단순히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달리는 모습, 뛰어오르는 모습, 웅크려 앉은 모습 등 아주 다양한 동작으로 표현돼 있어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 동물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정말 자세히 관찰했음을 알 수 있죠.

색깔도 아주 생생해요. 그림엔 주로 붉은색과 검은색이 이용됐어요. 철 산화물로 붉은색과 노란색을, '망간'이라는 광물이나 동물 뼈를 태운 재로 검은색을 표현했지요.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흥미로운데요. 어떤 그림은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벽에 찍기도 하고, 또 어떤 그림은 손을 벽에 댄 상태에서 물감을 묻혀 윤곽선을 그리기도 했어요. 마치 '스프레이'처럼요. 세계적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이 벽화를 보고 "알타미라 이후 모든 예술이 퇴보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벽화는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죠.

불 밝혀서 동굴에서 작업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함께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벽화도 있어요. 바로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예요. 이 벽화는 기원전 1만7000년에서 1만500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돼요. 웅장한 규모와 우수한 예술성 덕분에, 알타미라 동굴벽화보다 더 이른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죠.

라스코 동굴은 넓은 주 동굴에 좁고 긴 동굴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구조예요. 전체 길이는 약 250m에 달하지요. 그럼 어떻게 이 어두운 동굴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물 기름을 이용해 불을 붙인 뒤 어두운 동굴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라스코 동굴에는 총 2000점이 넘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주로 말, 들소, 사슴, 멧돼지 같은 동물들이며, 노란색·붉은색·검은색·갈색 등 다양한 색깔로 칠해져 있지요. 울퉁불퉁한 동굴 벽면에 그린 그림들은 마치 3D 그림처럼 보이기도 해요. 학자들은 이 동굴에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주술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답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는 무엇일까요? 프랑스 남부의 쇼베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의 예술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여겨진답니다. 이 동굴은 오랜 시간 동안 입구가 바위로 막혀 있어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벽화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죠.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한 결과, 이 벽화들은 약 3만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대요.

이 벽화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해요. 하이에나, 표범, 올빼미, 들소, 산양, 사슴 등 외에도 매머드나 오록스(소의 조상) 등 지금은 멸종된 동물들도 있어요. 흑백으로 그려졌음에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지요. 쇼베 동굴 벽화 또한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답니다.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