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곤장 때리는 처벌은 너무 가볍다" 조선에선 스승 비방이 '중죄'였죠

입력 : 2025.07.22 03:30

조선의 교권

조선 시대의 학교란 어땠을까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모두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고 선생님은 엄격하게만 가르쳤을까요?

사실 조선 시대에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의 대사성(성균관의 장)을 지냈던 퇴계 이황이 쓴 기록엔 이런 말이 나오죠. "요즘 학생들은 스승 보기를 지나가는 사람처럼 보고, 학교에 스승이 들어오면 가르침을 청하기는커녕, 벌렁 드러누워 흘겨보고, 옷 핑계를 대며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사소한 역사] "곤장 때리는 처벌은 너무 가볍다" 조선에선 스승 비방이 '중죄'였죠
그가 기록한 학교의 풍경은 분명히 수백 년 전인데도 어쩐지 좀 익숙해 보이죠? 율곡 이이는 학생들에게 "선생을 보면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지 도망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을 마주치면 인사도 하지 않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학생들이 그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뿐 아니라 제자가 스승을 모함하거나, 비방하는 대자보를 써붙이는 등 오늘날 종종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교권 침해' 관련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같은 경우엔 엄한 처벌이 뒤따랐습니다. 성종 때 조정의 중신들은 스승을 비웃는 글을 쓴 학생의 처벌을 논의한 적이 있는데, 신숙주를 비롯한 일부 신하는 "곤장 처벌은 너무 가볍다"며 학생들을 군대에 보내버리자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촌지 사건과 불공정 이슈가 불거지기도 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1791년(정조 15년) 성균관에서 벌어진 제자들과 선생님 간 충돌이었어요. 당시 선생님이 촌지를 받고 시험 결과를 조작한 일이 발단이었답니다. 이 때문에 흥분한 학생들이 선생님을 붙잡고 대사성에게 몰려가 고함을 질렀다고 해요. 발단 원인을 떠나서 제자가 스승을 위협한 일이었던 만큼 당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등 조선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고 합니다. 제자들 중 주동자는 유배를 가고, 해당 선생님은 파직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 시대에 훌륭한 스승과 제자들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도 학문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곁을 지킨 제자들은 그가 책을 쓰는 것을 도왔고, 덕분에 다산은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유학자 김장생은 스승 송익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숨기고 지키며 평생 은혜를 잊지 않았지요.

앞서 성균관의 학생들을 보고 한탄했던 퇴계 이황 역시 위대한 스승이었어요. 그는 자신보다 어린 제자와 후배들에게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정성껏 가르쳤고, 그 덕에 유성룡과 김성일을 비롯한 뛰어난 제자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도산서원에서는 퇴계 이황을 기리고 있지요.

지금도 어디선가는 좋은 스승과 좋은 제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엇나가고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아도, 냉소와 한탄보다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희망과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