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위인과 정신건강] 전기 치료 받을 만큼 힘들었던 헤밍웨이… 글쓰기로 정신적 고통 견뎠죠
입력 : 2025.07.22 03:30
헤밍웨이
"세상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 상처 덕분에 더 강해진다."
이 말은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사진)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동시에 이는 작가 헤밍웨이의 삶이 녹아 있는 말이기도 해요. 헤밍웨이는 미국 시카고 근처의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숲과 호수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며 자연을 가까이했고, 예술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리 편하진 않았답니다. 아버지가 의사였지만 우울증을 앓았고, 성악가였던 어머니는 무척 엄격했어요. 그래서 헤밍웨이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는 조용히 참는 법을 먼저 배웠어요. 겉으로는 활달했지만, 속마음에는 말하지 못한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지요. 바로 그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 그는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은 그가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을 대신해주는 도구였던 겁니다.
이 말은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사진)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동시에 이는 작가 헤밍웨이의 삶이 녹아 있는 말이기도 해요. 헤밍웨이는 미국 시카고 근처의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숲과 호수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며 자연을 가까이했고, 예술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리 편하진 않았답니다. 아버지가 의사였지만 우울증을 앓았고, 성악가였던 어머니는 무척 엄격했어요. 그래서 헤밍웨이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는 조용히 참는 법을 먼저 배웠어요. 겉으로는 활달했지만, 속마음에는 말하지 못한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지요. 바로 그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해 그는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은 그가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들을 대신해주는 도구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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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피디아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헤밍웨이는 구급차 운전병으로 자원해 전쟁터로 나갔어요.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죠. 헤밍웨이는 전장에서 많은 부상자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고, 본인도 크게 다쳤어요. 이때의 경험은 나중에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담기게 되었지요.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어요. 전쟁터에서도, 바다 한가운데에서도, 호텔 방 작은 책상 앞에서도 말이에요. 어디에 있든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라는 사실이 그 자신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그는 하루에 몇 시간씩은 서서 글을 썼고, 어떤 날은 단 한 문장을 위해 수십 번이나 고치고 또 고쳤어요.
그에게 글쓰기는 마음속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이었어요.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늘 불안을 겪으며 살았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 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져 술에 의지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기복, 피해망상과 조울증 증상을 보였고, 말년에는 전기 치료를 받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술은 일시적인 피난처였지만, 결국 더 깊은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만들었어요.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는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는 노인의 이야기예요. 하지만 사실은 세상과 싸운 헤밍웨이의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소설 속 주인공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절대 패배하지 않아. 부서질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아."
그에게 글쓰기는 현실을 견디게 하는 방패였고, 상처를 봉합하는 실이었어요. 그의 고통은 문장으로 짜였고 그가 쓴 글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견디는 법을 보여주었지요.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아프고 흔들릴 수는 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해요. 헤밍웨이는 그 믿음을 삶과 글로 증명한 사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