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마네·모네·마티스… 파리의 화가들은 어디로 휴가를 갔을까?

입력 : 2025.07.21 03:30

휴가와 물놀이

삼계탕을 비롯한 보양식을 먹는 날로 알려진 초복(初伏)이 어제였어요. 그런데 24절기 중 하나인 '대서(大暑)'가 7월 22일, 초복과 불과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요. 초복부터 말복까지 이어지는 삼복더위는 1년 중 가장 무더운 약 3주 동안의 시기고, 대서는 날씨가 가장 뜨거운 날을 말해요. 올해처럼 초복과 대서가 비슷한 시기에 겹치면, 무더위가 더 심하게 느껴질 수 있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불볕더위와 열대야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럴 땐 무리하지 말고 수시로 휴식을 취하면서, 기운이 날 만한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히 이 무렵 학생들은 신나는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어른들도 휴가를 떠나는 때예요. 이렇게 더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원한 바다나 계곡에 풍덩 뛰어들고 싶어지지 않나요? 오늘은 물놀이 장면을 담은 그림을 감상하면서 19~20세기 유럽 사람들의 여름휴가지로 함께 상상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근대 도시인의 여가

프랑스 파리는 19세기 중반 이미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화가들은 모두 파리로 모여들었지요. 그들은 주로 파리의 번화가와 카페,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을 화폭에 담곤 했어요. 하지만 여름이 되면, 화가들도 바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이나 바닷가로 휴가를 떠났어요. 간단한 그림 도구만 챙겨서 말이죠. 특히 햇빛에 따라 하늘과 물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어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겐, 여름 휴양지가 최고의 장소였을 겁니다.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보트 놀이’(1874). 캔버스에 오일. 나무 보트를 타고 있는 남녀의 표정과 자세에서 여유가 느껴집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보트 놀이’(1874). 캔버스에 오일. 나무 보트를 타고 있는 남녀의 표정과 자세에서 여유가 느껴집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1〉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그린 '보트 놀이'입니다. 바쁜 도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어요. 그 시절 파리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도시 밖으로 나가 센강에서 보트나 요트를 타며 휴식을 즐겼답니다.

그림에는 흰 셔츠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남자와 파란 옷을 입은 여자가 보입니다. 둘은 푸른 강물 위 나무 보트에서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아 있죠.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는 듯합니다. 파란색과 흰색으로 구성된 그림은 시원한 느낌을 주고, 마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져요. 바람을 맞으며 쉬는 여성의 모습은 여름휴가의 느긋한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 ‘트루빌의 해변’(1870). 캔버스에 오일. 프랑스 노르망디 바닷가를 배경으로 자신의 아내를 그렸어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
클로드 모네의 작품 ‘트루빌의 해변’(1870). 캔버스에 오일. 프랑스 노르망디 바닷가를 배경으로 자신의 아내를 그렸어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
〈작품2〉는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바닷가 휴양지인 트루빌에서 그린 그림이에요. 이곳은 모네가 신혼여행을 갔던 곳으로, 그림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예요. 모네는 아내 앞에서 이젤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모네가 이 그림을 그린 날은 바람이 제법 불었나 봐요. 그림에는 진짜 모래알이 박혀 있거든요. 바람에 날린 모래가 캔버스 위 물감에 달라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모네는 젊은 시절에 노르망디 해안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여러 점의 바다 풍경화를 남겼죠. 나이가 들어서는 노르망디의 지베르니라는 마을에 살면서 정원의 연못과 수련을 자주 그렸지요.

당시엔 여성 수영복이 보급되기 전이라, 해변에 온 상류층 여성들은 수영복 대신 모자와 양산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채 바다를 구경하거나 모래사장을 산책했어요.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주로 옷을 쉽게 벗을 수 있는 남자아이들이었습니다.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가 그린 ‘해안가의 아이들’(1903). 캔버스에 오일. 그는 경쾌한 색채로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 모습을 묘사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가 그린 ‘해안가의 아이들’(1903). 캔버스에 오일. 그는 경쾌한 색채로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 모습을 묘사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이상향으로서의 휴양지

〈작품3〉은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1863~1923)가 그린 '해안가의 아이들'입니다. 이 그림엔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스페인 발렌시아 해변에서 벌거벗은 채 자유롭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등장해요. 어떤 아이는 파도를 타고, 어떤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신나게 놀고 있지요.

소로야는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묘사하는 데 뛰어난 화가였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담은 이런 해변 그림은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답니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아이들이 부끄러움 없이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 때문이에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에겐 이런 장면이 잠시나마 자연에서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줬어요.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편히 쉬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 것이죠.

앙리 마티스의 ‘사치, 고요, 쾌락’(1904). 캔버스에 오일. 짧은 붓질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여름 해변을 묘사했죠.
/오르세 미술관
앙리 마티스의 ‘사치, 고요, 쾌락’(1904). 캔버스에 오일. 짧은 붓질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여름 해변을 묘사했죠. /오르세 미술관
〈작품4〉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가 1904년에 발표한 '사치, 고요, 쾌락'이라는 그림이에요. 마티스는 프랑스 남부의 생트로페라는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내며 이 작품을 그렸지요.

마티스는 짤막하게 끊어진 붓질로 빨강·파랑·노랑의 원색을 조합했어요. 바다·하늘·땅·사람이 서로 섞여 있는 환상적인 모습을 묘사했지요. 이 그림은 실제 물놀이 장면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니에요. 마티스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꿈꾸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여름 해변을 표현했어요. 산업화·기계화된 근대 문명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여름 해변을 상상한 거죠.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