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AI 시대, 역사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거 통해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것"

입력 : 2025.07.21 03:30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재밌다, 이 책!] AI 시대, 역사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거 통해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것"
◆김기봉 지음|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격 1만6000원

'역사'란, 또 '역사학'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을 쓴 역사학자 김기봉은 '역사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시간, 공간이라는 변수들로 이루어진 '3차 방정식'이라는 것이지요. 과거에 살았던 조상들, 지금을 사는 우리, 미래에 태어날 사람들까지 모두 연결해주는 이야기가 바로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나는 누구일까?"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지요.

저자는 조선 왕조가 50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생명력이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내고 실록 편찬을 멈추지 않은 투철한 역사의식에 있다고 봅니다. 조선의 왕들은 자신의 행동이 기록될 것을 알고 항상 조심했지요. 실록은 사관(역사를 적는 사람)만 볼 수 있었고, 왕도 함부로 못 봤어요. 그만큼 역사를 무겁고 중요하게 여겼던 거예요.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을 담는 일이지만, 그 기록 덕분에 사라진 것들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삶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도,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바탕을 두는 것이지요. 역사는 바로 그런 의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는 일을 합니다. 예를 들어,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원인을 '계몽사상'에서 찾기도 하지요.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정말 그게 원인이었을까?" 하고 의문을 던집니다.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는 데엔 수많은 원인이 있는데, 우리가 중요한 것만 골라서 유일한 원인처럼 꾸미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즉, 당시 상황을 관찰해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어떠한 역사적 사건의 원인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역사학이 안고 있는 과제도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교과서에서도 유럽 중심의 역사를 중요하게 다루고, 여러 역사적 사건 역시 유럽인의 시각에서 서술된 경우가 많았지요. 또한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지금까지 한국사·동양사·서양사로 분야가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구분을 뛰어넘어 역사를 문명의 교류 과정과 그 결과로 봐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 즉 '지구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구촌'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지역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역사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역사학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과학이 현실 과학이라면, 인문학은 상상의 학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상상력을 강화하는 것이 인문학의 나아갈 방향이고 역사학의 미래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그래서 과거를 통해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미래를 상상하게 도와주는 것이 역사학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