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전국에 서울대 10개 설립? 원래 10개 학교 통합해 만들었죠
입력 : 2025.07.10 03:30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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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에 세워진 '샤' 조형물. 그 전까지 서울대엔 정문이 없었다고 해요. /조선일보DB
서울대는 우리나라 국립대와 전체 대학교를 대표하는 학교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서울대는 언제, 어떻게 설립돼 지금까지 온 걸까요? 오늘은 우리나라에 '대학'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때부터 서울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전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처음으로 '대학'이 설립되다
사실 우리나라에 대학을 세우자는 주장은 조선 말기인 1880년대부터 등장합니다. '한성순보' 등 당시 신문 기사에는 대학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어요. "다른 나라에선 수도에 대학이 세워지며, 대학생들은 모두 총명하고 재기 있는, 장차 나라를 이끌 사람들이다." 1894년 갑오개혁 시기에는 고등교육 기관 설립도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이 구상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지요.
일제 강점 초기 조선에는 대학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대신 일본어 교육을 중심으로 한 기초적인 교육(초등교육)과 기술을 배우는 것이 강조됐지요. 그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는 조선인들의 저항을 달래기 위해 교육 정책에도 변화를 주게 됩니다.
그 결과 1920년대 들어 조선에도 대학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어요. 이때 조선 사람들 스스로 대학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는데, 이를 '민립대학설립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민립대학설립운동 열기가 뜨거워지자, 일제는 이를 단순한 교육 활동이 아니라 위험한 정치 운동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대학에서 정치, 법, 경제 등을 배워 조선 사람들이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일제는 학교 설립 자금을 모으기 위한 모금 활동을 막고, 설립 운동을 이끈 사람들을 감시하며 활동을 탄압했어요.
대신 일제는 1924년 조선 경성(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세웠어요. 한국 땅에 처음 세워진 대학이었지만, 조선 사람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였어요. 전체 졸업생 중 조선인은 4분의 1 정도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대학에서 하는 연구도 조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보다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통치를 더 쉽게 하기 위한 것이 많았죠.
해방 이후 탄생한 '서울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에는 우리 손으로 나라를 이끌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됩니다. 해방 직후 경성제국대학에 다니던 한국인 학생들은 학교 간판에서 '제국'이라는 글자를 종이로 가리며 식민지 교육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해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미군정은 경성제국대학의 이름을 '경성대학'으로 바꾸고, 새로운 '종합대학'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그 결과 경성대학을 비롯해 경성법학전문학교·경성사범학교·수원농림전문학교 등 학교 10개를 합친 서울대학교가 1946년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서울대는 단과대학 9곳과 대학원 1곳으로 구성됐습니다. 특히 기존에 있던 여러 학교를 합쳐서 만든 만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어요. 오늘날처럼 서울대가 하나의 큰 캠퍼스 안에 대부분의 단과대학들이 다 모여 있던 모습이 아니었어요. 예를 들어, 개교 당시 문리과대학의 문학부와 법과대학, 예술대학은 서울 동숭동(지금의 마로니에공원 일대)에, 의대는 지금도 있는 서울 연건동에, 농대는 경기 수원에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대의 진짜 시작은 언제일까?" 하는 질문이 생기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서울대로 통합된 단과대학들 중 일부가 1895년에 처음 생겼기 때문에, 그때를 서울대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요. 서울대가 일제 강점 이전에 설립된 교육기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여러 단과대를 두고 있는 '종합대학'으로 개교한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만큼 1946년을 개교 연도로 봐야 한다고도 주장해요. 서울대 역사에 일제강점기까지 포함하는 것은, 해방 이후 새롭게 출발한 서울대의 정통성을 훼손한다고도 하지요.
그렇다면 서울대는 스스로 언제 시작됐다고 생각할까요? 서울대가 직접 편찬한 '서울대학교사(史)'를 보면, 1946년을 서울대의 개교 시점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이전에 있었던 학교들도 서울대의 '전사(前史)', 즉 앞선 역사로 함께 다루고 있답니다. 서울대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함께 기록한 거죠.
흩어져 있던 단과대학들을 한자리에 모으려는 계획도 있었어요. 1975년, 정부는 '서울대 종합화'를 실시해 대부분의 단과대학을 관악구에 새로 만든 캠퍼스로 옮겼어요. 이로써 지금처럼 넓은 서울대 캠퍼스가 만들어졌고, 바로 올해가 종합화가 이뤄진 지 50년이 되는 해랍니다.
규장각은 왜 서울대 안에 있을까?
서울대에는 다양한 단과대뿐 아니라,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라는 특별한 기관도 있어요. 이곳에는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같은 조선 시대의 귀중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지요. 왜 이런 중요한 자료들이 서울대 안에 있는 걸까요?
'규장각'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정조 임금이 만든 기관에서 따온 것이에요. 당시 규장각은 나라의 중요한 책과 문서를 모으고, 새 책을 펴내고, 공부하는 학자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국립도서관이나 국가 연구 기관 같은 곳이었지요.
일제는 경성제국대학을 세우면서 규장각에 있던 책과 문서들을 학교로 옮겼어요.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서울대가 자료를 소장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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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6년 개교 당시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의 모습. 경성제대 시절 건물 상당수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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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규장각 건물이에요.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가 생기자, 경성제국대학에 보관됐던 자료들을 자연스럽게 서울대가 맡게 됐습니다.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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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년 촬영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항공사진. 서울대 종합화 이전까진 단과대학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