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그림자 속 정보전…이스라엘 비밀 기관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됐나

입력 : 2025.07.09 03:30

모사드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장갑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이 전쟁을 거치며 전문 정보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모사드가 설립됩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장갑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이 전쟁을 거치며 전문 정보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모사드가 설립됩니다.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중동 지역에 다시 한번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군사 작전을 실시한 것인데요. 특히 이번 충돌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쟁 초반부터 모사드는 드론을 이용해 이란을 공격하고, 이란 군대의 장군들에겐 협박 전화를 걸어 심리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사드는 미국 CIA, 영국 MI6와 더불어 오늘날 '세계 3대 정보기관'으로 불립니다. 모사드는 그림자 속에서 세계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며 현대 전쟁에서 정보기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사드는 언제 탄생했고, 어떻게 '세계 최정예 정보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국가 안보 위해 설립한 정보기관

모사드는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만들어졌어요. 유대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민족 국가를 세우고자 했는데요. 특히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 유대인 수백만 명이 희생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대인을 위한 독립국가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생겼어요. 그 결과 1947년 국제연합(UN)은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분할하는 방법을 제시했죠. 유대인들은 이를 수용했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됩니다.

모사드의 문장(紋章). 유대교를 상징하는 촛대 ‘메노라’가 그려져 있고, 그 주위로는 히브리어로 ‘지략이 없는 백성은 망하지만 지략이 있는 백성은 평안을 누린다’고 적혀 있어요.
모사드의 문장(紋章). 유대교를 상징하는 촛대 ‘메노라’가 그려져 있고, 그 주위로는 히브리어로 ‘지략이 없는 백성은 망하지만 지략이 있는 백성은 평안을 누린다’고 적혀 있어요.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을 표시한 지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지요.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을 표시한 지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지요.
하지만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수백만 명의 아랍인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외부에서 온 유대인이 자신들의 땅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지요. 주변 아랍 국가들도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5개 아랍 국가(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1차 중동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아랍 국가들의 연합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무엇보다 정보력이 중요했어요. 당시 이스라엘은 인구도 적고, 국력도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수집해 효율적으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보호하고 외부의 위협을 감시할 수 있는 전문 정보기관이 절실했죠.

결국 이스라엘은 1949년 최초의 통합 정보기관을 만들었고, 1951년 이 조직은 히브리어로 '기관(Institute)'을 뜻하는 '모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이후 모사드는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 적대적인 아랍 국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점점 작전 능력을 키워갔어요. 단순한 정보 분석 기관이 아니라, 실제 작전에 관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이죠.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에서는 그런 모사드의 능력이 잘 드러났어요. 당시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뒤, 운하 운영권을 갖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를 공격합니다. 이때 모사드는 이집트 내 유대인 커뮤니티와 협력해 이집트군의 동향과 중요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영국과 프랑스에 제공해 전쟁의 흐름에 영향을 미쳤죠.

'보복 작전'으로 세계적 명성 얻어

모사드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작전이 있습니다. 바로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납치해 이스라엘로 데려온 사건이에요.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핵심 인물 중 하나였어요.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도피 생활을 했고 1950년엔 아르헨티나로 도주한 후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었어요. 모사드는 수년간의 은밀한 조사 끝에 그가 살고 있는 곳을 확인했고,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에서 비밀리에 그를 체포해 이스라엘로 이송했습니다.

예루살렘 법정에 출석한 아돌프 아이히만(가운데).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그를 비밀리에 납치했습니다.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게티이미지코리아
예루살렘 법정에 출석한 아돌프 아이히만(가운데).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던 그를 비밀리에 납치했습니다. /브리태니커·위키피디아·게티이미지코리아
이후 아이히만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15가지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졌죠. 이 작전은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외교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치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을 다시 알리고 모사드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했어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지속되면서, 모사드는 갈수록 과감한 작전을 감행하는 정보기관이 되어 갔습니다. 특히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이 일어난 후엔 직접적인 무력 행동도 불사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주었죠.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은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촌에 잠입해 11명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실패로 끝났고 결국 인질 전원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모사드는 비밀 보복 작전을 진행합니다. 작전 이름은 '신의 분노(Operation Wrath of God)'. 모사드는 테러에 연관된 사람들을 수년간 추적하고 사살했습니다. 위장, 암살, 독극물, 저격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이들을 제거했죠.

첨단 기술 이용해 상대 무력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모사드는 기술 중심의 정보기관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이제는 예전처럼 몰래 잠입해서 사진을 찍거나 도청만 하는 게 아니라, 사이버 공격, 해킹, 인공지능(AI) 분석, 생체 정보 추적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작전을 펼치고 있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발견된 '스턱스넷(Stuxnet)' 바이러스입니다. 이는 이란의 핵 시설 운영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악성코드로, 미국과 모사드의 합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최근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피해를 입힌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사건의 배후도 모사드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직접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를 무력화하는 새로운 전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지요.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