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산 이야기] 무협 영화 주인공이 된 듯한 산행… 유네스코도 아름다움 인정했죠

입력 : 2025.07.07 03:30

주왕산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의 기암(旗巖). 주왕을 잡은 신라군이 이곳에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이 있어 ‘기이할 기(奇)’ 자가 아닌 ‘깃발 기(旗)’ 자를 쓰지요.
/조선일보DB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의 기암(旗巖). 주왕을 잡은 신라군이 이곳에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이 있어 ‘기이할 기(奇)’ 자가 아닌 ‘깃발 기(旗)’ 자를 쓰지요. /조선일보DB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힘든 산행은 부담스럽다면 경북 청송에 있는 주왕산(722m)을 추천합니다. 산세가 완만해서 걷기 편하면서도 놀라운 협곡이 펼쳐지는 주왕계곡이 있어 여름에 시원한 활력이 될 거예요.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지리서 '택리지'에서 주왕산을 두고 '눈과 마음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만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거주한 지 10년이 넘은 어느 핀란드 여성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주왕산처럼 멋진 산을 두고 왜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도 있지요. 수백 년이라는 간극이 있음에도 두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같습니다. 주왕산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주왕산의 아름다움은 세계에서도 인정받았어요. 주왕산국립공원의 기암, 주왕계곡 협곡, 연화굴, 주방천, 용연폭포 등을 포함한 청송군 내 24곳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유네스코가 4년에 한 번 심의를 거쳐 지질학적 가치와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곳을 지정하는 세계지질공원은 현재 50국 229곳밖에 없을 정도로 귀한 자연유산입니다. 국내엔 총 7곳이 있답니다.

주왕산은 산 전체가 한 편의 흥미로운 영화 같아요. 주왕계곡 입구에 닿으면 거대한 기암(旗巖)이 눈길을 사로잡아요. 원래 한 덩어리였던 바위가 오랜 시간 풍화와 침식을 거쳐 일곱 봉우리로 갈라졌는데, 마치 예술가가 거대한 바위를 '뫼 산(山)' 자 모양으로 조각한 듯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함께 준답니다.

'주왕'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걸까요? 여기엔 전설이 담겨 있어요. 중국 당나라 때 주왕(周王)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랍니다. 그는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한 뒤 당의 도읍이었던 장안으로 쳐들어가 반역을 꾀하다 크게 패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까지 도망을 와서 지금의 주왕산에 숨었다고 해요. 이에 당나라는 신라에 주왕을 잡아달라고 요청하지요. 지략이 뛰어났던 주왕은 주왕산 기암을 곡식 더미로 위장했고, 식량과 병사가 많은 것처럼 토벌군을 속였다고 합니다.

주왕산에는 전설 속 장소들이 남아 있어요. 주왕이 군사들을 숨겼다는 무장굴, 주왕의 딸인 백련 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 주왕이 신라군의 화살과 철퇴에 맞아 죽었다는 주왕굴 등이 있지요. 주왕이 흘린 피가 산을 따라 흘러 수달래(산철쭉)가 피어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기암 아래에 오래된 사찰 대전사를 지나면 주왕계곡이 나타납니다. 무협지에 나올 법한 바위 협곡이 눈과 마음을 놀라게 하고, 이어서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가 연달아 등장하며 계곡미의 절정을 보여주지요. 또 인근 주왕굴에 들러서는 주왕의 전설을 상상해 보세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무협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답니다.

신준범 월간 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