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실패 끝 '파초선' 구한 손오공… 시련은 깨달음의 과정이죠

입력 : 2025.07.03 03:30

서유기

[재밌다, 이 책!] 실패 끝 '파초선' 구한 손오공… 시련은 깨달음의 과정이죠
오승은 지음|임홍빈 옮김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격 각권 1만3000(전 10권)

최근 뉴스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공직자들에게 "작은 파초선 부채질에 세상이 뒤집어진다"면서 책임감을 강조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파초선은 중국 고전 '서유기'에 등장하는 전설의 부채를 가리킵니다. 한 번 부치면 천둥·번개가, 두 번 휘두르면 폭풍우가 친다고도 했지요.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세상의 질서가 바뀐다는 점에서, 공직자의 영향력을 파초선에 빗댄 것입니다.

서유기는 16세기 중국 명나라의 오승은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TV 만화 속 손오공부터 영화, 연극, 게임에 이르기까지, 동양 고전 중 서유기만큼 풍부하게 재창조된 작품은 드물지요.

이야기는 당나라 시대 승려 현장(삼장법사)이 천축국(인도)으로 경전을 구하러 떠나는 여정을 다룹니다. 머나먼 길에서 삼장법사는 세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돌에서 나와 도술을 익히고 천상과 지옥을 오가던 천방지축 손오공, 식탐과 욕망으로 가득한 저팔계, 그리고 과묵하지만 성실한 사오정입니다. 이들은 죄를 씻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삼장법사를 따르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인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총 81가지 크고 작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오공은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충동적이고 다혈질인 성격 때문에 번번이 야단을 맞고, 저팔계는 욕심과 게으름으로, 사오정은 지나치게 고지식한 성격으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심지어 삼장법사마저 요괴의 교묘한 속임수에 빠져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결점이 있고, 서로 부딪치며 갈등을 겪지요. 하지만 바로 그 갈등과 시행착오를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갑니다. 목표가 분명하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은 우리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파초선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 속 손오공 일행은 여정 중 강력한 불꽃으로 가득한 '화염산'을 지나게 됩니다. 오직 파초선만이 이 불을 잠재울 수 있었지만, 그 부채를 손에 넣기까지는 수차례의 실패와 좌절이 이어졌습니다. 파초선을 갖고 있는 철선공주에게 부채질을 당해 5만 리를 날아가기도 하고, 겨우 파초선을 구한 줄 알았더니 그것이 가짜인 적도 있었지요.

서유기는 단순한 모험 소설이 아닙니다. 불교·도교·유교는 물론 민간 신앙까지 아우른 '동양적 상상력의 정수'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삼장법사 일행의 여정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위선적인 권력자는 요괴의 형상으로 등장해 인간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냅니다.

우리 모두가 삶의 한가운데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서유기는 그 모든 과정이 의미 없는 방황이 아니라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소중한 여정임을 말해줍니다.


이진혁 출판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