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정쟁으로 유배된 문인, 어머니 걱정 덜려고 소설 지었대요
입력 : 2025.07.03 03:30
김만중과 '구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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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미국 포틀랜드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운몽도 병풍. 최근 국내에서 보존 처리를 끝내고 공개됐어요.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주요 장면을 10폭에 나눠 그렸어요. ②병풍 6폭엔 양소유(그림 중앙)가 용왕의 딸 백능파를 만나는 꿈을 꾸는 장면이 묘사됐지요. ③구운몽도 병풍 1폭. 승려 성진이 사찰로 돌아가는 돌다리에서 팔선녀를 만나는 모습입니다. ④김만중의 영정. 원본을 보고 다시 그린 '이모본(移模本)'으로, 원본은 서화에 능한 그의 조카가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국립고궁박물관·국가유산청
스무 살 어머니의 매서운 교육열
"응애, 응애~!"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다들 혀를 찼어요. "저런 쯧쯧, 가엾기도 하지." "어쩌다 전쟁통에 배 위에서 태어나다니…." 1637년(인조 15년) 2월 김만중은 병자호란의 난리 속 퇴각하던 병선(兵船) 위에서 출생했어요. 강화도에 있던 어머니 윤씨가 갯가로 몸을 피했고, 마침 배를 얻어 타 피란을 갈 수 있었던 것이었죠.
아버지는 어떻게 됐던 걸까요? 한 달 전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를 침략할 때 성균생원이었던 부친 김익겸은 다른 관리들과 함께 화약궤에 불을 붙여 스스로 폭사했습니다. 김만중은 순국한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자랐던 것이죠.
난리가 그치자 김만중은 외갓집이 있는 서울에서 살게 됐습니다. 김만중의 교육을 맡게 된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이제 만 20세. 그런데 보통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선조의 딸인 정혜공주의 손녀로서 경전과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은 여성이었습니다. '소학' '사략' '당시' 같은 책을 어머니가 직접 김만중과 그 형 김만기에게 가르칠 정도였다고 해요. 책을 빌려 직접 베껴 쓰는 방식으로 교재를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윤씨는 "너희들은 과부의 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게끔 재주와 학문이 남보다 한 등급은 뛰어나야 한다"며 엄격히 키웠다고 합니다. 어린 김만중이 어려운 집안 살림을 걱정해 책을 사지 않자, 아들을 회초리로 때리면서 온종일 짠 옷감 절반을 뚝 잘라 줬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유배 중 모친 장례식도 참석 못 하고…
1665년(현종 6년) 김만중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학문적 바탕이 훌륭했던 데다 명문가 출신이어서 초년 관직 생활은 상당히 탄탄대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언(사간원 정6품), 지평(사헌부 정5품)과 암행어사를 거쳐 동부승지(승정원 정3품)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1674년 효종 비 인선왕후가 승하하면서 제2차 예송 논쟁이 벌어집니다. 이 논쟁에서 남인이 서인에게 승리를 거두자 서인 세력에 속해 있던 김만중은 관직을 삭탈당하는 쓴맛을 보게 됩니다. 1680년(숙종 6년) 남인 세력이 축출되는 '경신대출척'을 거쳐 서인은 다시 집권하는데, 이보다 한 해 전 예조참의로 복귀한 김만중은 공조판서와 대사헌(사헌부의 수장)을 거쳐 1686년 대제학(홍문관·예문관의 수장)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끝내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1687년 남인의 지지를 받고 있던 장희빈 세력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의금부에서 고초를 겪고 유배됐습니다. 1689년엔 서인이 대거 축출된 '기사환국'이 일어나 남해의 노도에 위리안치(유배된 집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치는 것)됐습니다.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병사했고, 김만중은 모친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1692년 만 55세로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공과 해탈을 모두 다룬 작품 '구운몽'
여기까지만 보면 '당쟁이 심하던 현종·숙종 시기 희생당한 서인 세력의 중신(重臣)'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김만중에게는 대단히 큰 반전(反轉)이 있었습니다. 국문학사상 반드시 언급되는 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였기 때문이죠.
보수적 성리학자인 송시열 계열의 문인답지 않게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했다는 특징도 있고, '국문 가사 예찬론'으로 평가받는 우리말 문학론을 주장한 것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며 송강 정철이 지은 '사미인곡' 같은 한글 가사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김만중의 대표작이라 할 '구운몽'은 그가 귀양지에서 어머니 윤씨의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본이 한글인지 한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불도를 수행하던 성진이라는 인물이 심부름을 갔다가 팔선녀를 만나 서로 희롱한 뒤 벌을 받아 양소유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양소유는 온갖 무공을 세워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고, 팔선녀의 후신인 여성 8명을 차례로 만나 아내로 삼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인생무상을 느끼던 순간 꿈을 깨고 본래의 성진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꿈과 현실이 모호하게 교차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이 소설에는 유교·불교·도교 등 한국인의 기반을 이루는 사상이 총체적으로 언급돼 있습니다. 불교의 '공(空)' 사상이 중심인 듯하지만, 정작 꿈속에서는 세속적 욕망을 달성함으로써 유교적 이상의 정점에 오른다는 점에서 양쪽 사상이 모두 보인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요컨대 '젊어서는 유교적으로 성공하고, 늙어서는 불교적으로 해탈하고 싶다'는 이중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황제의 누이동생, 용왕의 딸, 토번의 검객 등 다채로운 배경을 지닌 여성 8명의 활약도 대단한데요. 당시 작품치고는 대단히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진짜 주제를 파헤치는 연구자도 많았어요. 당대 남성 사대부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부터 '해방과 희망의 서사' '위로와 치유의 서사'를 비롯해 '사씨남정기'와 같이 현실의 권력자인 숙종 임금의 각성을 염원하는 작품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현실 세계의 권력이나 사랑은 다 헛된 것이니 제발 정신 차리라'는 의미였다는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