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세계 석유의 25% 지나는 길목… 이란은 '보복 카드'로 활용
입력 : 2025.07.02 03:30
호르무즈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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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르무즈 해협 인근을 지나고 있는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의 모습. 오늘날 이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운송로 중 한 곳입니다. /신화 연합뉴스
다행히 해협 봉쇄가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란은 미국과 서방에 대한 '보복 카드'로 호르무즈 해협을 언급하는데요. 이 해협은 어떤 곳이길래 세계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요?
조로아스터교 유일신 이름에서 유래
우선 이름의 의미에 대해 살펴볼게요. '호르무즈'라는 이름은 오랜 역사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이 믿었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아후라 마즈다'라는 유일신을 섬겼는데요. '아후라'는 '주님'을 뜻하고, '마즈다'는 '지혜'를 뜻해요. 곧 '지혜의 주님'이라는 뜻이지요. 학자들에 따르면, 후대 사람들이 '아후라 마즈다'를 줄여 부르며 '호르무즈'가 됐다고 해요. 이것이 인명과 지명으로 쓰인 것이지요. 실제로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이었던 사산 왕조에서는 호르무즈라는 이름을 가진 황제가 5명이나 있었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아주 중요한 길목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이란과 오만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그 사이 좁은 바닷길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지요. 이 해협의 가장 넓은 곳은 폭이 약 96㎞, 가장 좁은 곳은 약 39㎞밖에 안 돼요. 동서 길이도 167㎞ 정도인 아주 좁고도 짧은 바닷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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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지역 지도예요. 페르시아만 연안의 산유국들은 이 해협을 통해 원유와 가스를 수출하죠.
호르무즈 해협은 예전부터 중요한 물류 요충지로 기능해 왔답니다. 20세기 초 중동에서 석유가 나오기 전에는 이 해협을 통해 다양한 물건이 오갔죠. 향료와 진주, 대추야자, 말, 도자기, 직물, 심지어 노예들까지 이 항로를 통해 운송됐습니다.
무역로였던 호르무즈 해협이 오늘과 같은 주요 에너지 운송 통로가 된 것은 1908년 영국이 이란에서 중동 최초의 석유를 발견하면서부터랍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을 거쳐야만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인 이란과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가 원유와 가스를 세계로 수출할 수 있어요. 작년 기준 전 세계 석유 해상 운송량의 4분의 1 정도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합니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많이 석유를 수입하는데요.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이 길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여기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국내 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세계 뱃길 중 석유를 실은 배들이 자주 오가는 바닷길은 몇 군데 정해져 있어요. 대표적으로는 덴마크 해협, 믈라카 해협, 다르다넬스 해협,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등이 있지요.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에서 둘째로 원유 수송량이 많다고 해요. 1위는 믈라카 해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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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페르시아만에 있는 이란의 석유 시설이 미 해군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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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서산에 있는 한국석유공사의 석유 비축 기지.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석유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오지요. /한국석유공사
호르무즈 해협은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따로 있어요. 배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폭이 약 3.7㎞(2해리)인 항로 두 개를 만들었죠. 또한 그 사이에는 일종의 완충 지대인 중간 수역(폭 2해리)을 두었습니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폭이 워낙 좁다 보니, 이곳을 통과하려면 이란 영해를 지나게 된다는 거예요. 국제법에 따르면 한 나라는 자국의 해안선(기선)에서 최대 12해리(약 22㎞)까지를 자국 영해로 설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해협에서 가장 좁은 곳이 21해리(약 39㎞)이기에, 이란 영해를 통하지 않고는 이동이 힘든 것이죠. 지금은 이란과 오만이 협력해 세계 각국의 선박이 이곳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 상황처럼 이란이 해협 봉쇄를 시사하거나, 두 나라 사이 갈등이라도 생긴다면 세계의 에너지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봉쇄된 적은 없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이란과 미국의 사이가 나빠지면서부터입니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란은 친(親)미 국가였지요. 미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쌍둥이 기둥'이라고 부르며 페르시아만 지역을 자원 안보의 핵심 축으로 삼아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란의 이슬람 혁명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란 왕정이 무너지고 반미 성향의 이슬람 신정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란과 미국 사이 긴장이 빠르게 고조됐지요. 이후 1980년대엔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양국은 상대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해 서로의 유조선과 민간 상선을 집중 공격했습니다. '유조선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이 충돌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전쟁터로 만들었죠. 결국 미국은 페르시아만의 주요 에너지 운송로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해군을 파견했고, 이란 해군 자산을 파괴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자체를 막지는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위기가 극심할 때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한 적은 없어요. 최근 이란 핵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미국과 서방의 경제제재 수위도 높아졌고,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위협적인 발언도 자주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해협 통행을 막으면 이란 역시 자국 석유를 수출하기 어렵죠. 이란으로서도 막심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에, 해협 봉쇄는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어요. 호르무즈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이번에도 지혜롭게 위기를 넘기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