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고사성어] "가난할 때 함께한 아내 버릴 수 없어"… 신분 상승보다 의리 택했죠

입력 : 2025.07.01 03:30

조강지처 - 가난한 시절 같이 버틴 아내라는 뜻
糟 지게미 조
糠 겨 강
之 어조사 지
妻 아내 처

[뉴스 고사성어] "가난할 때 함께한 아내 버릴 수 없어"… 신분 상승보다 의리 택했죠
미국 아마존을 글로벌 빅테크로 일군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약혼녀 로런 산체스와 가진 초호화 결혼식이 화제입니다. 앞서 베이조스는 25년간 아내였던 매켄지 스콧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지난 2019년 이혼을 했는데요,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까지는 전처인 스콧의 공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존의 성공이 불투명했던 시기, 스콧은 남편이었던 베이조스를 지지하며 모든 과정을 함께 일궈나갔다고 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온 아내를 조강지처(糟糠之妻)라고 부릅니다. '지게미 조(糟)' '겨 강(糠)' '어조사 지(之)' '아내 처(妻)' 자를 쓰지요. 술을 만들 때 생기는 찌꺼기인 술지게미[糟]와 쌀겨[糠]로 끼니를 해결했던, 가난하고 힘겨운 시간을 같이 버텨온 아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한(漢)나라 황제의 '결혼 작전'에서 시작됐습니다.

고대 중국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에게는 누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을 했습니다. 광무제는 재혼을 염두에 두고 누나에게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는지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호양공주는 송홍(宋弘)이라는 신하가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송홍은 성품도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결혼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광무제는 슬쩍 송홍의 의중을 떠보기로 합니다.

광무제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사람이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요?" 그러자 송홍이 답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가난하고 천한 시절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貧賤之交不可忘·빈천지교불가망],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는 쫓아내선 안 된다[糟糠之妻不下堂·조강지처불하당]고 했습니다." 그의 대답에 광무제는 물론이고 병풍 뒤에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호양공주도 머쓱해졌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강태공(姜太公)'으로 잘 알려진 강상(姜尙)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은 돌보지 않은 채 책만 읽고 지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가 이어지자 집을 나가 강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지요. 낚시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줄 사람을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그 후 서백(西伯)이 강상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등용하지만, 아내는 집을 떠나고 난 뒤였습니다. 서백의 아들을 도와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강상은 '태공망(太公望)'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그의 성이 강씨였기 때문에, 후대에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된 것입니다.

강태공이 부귀해지자 떠났던 아내가 찾아옵니다. 아내는 다시 잘 지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강태공은 물이 담긴 양동이를 엎지른 후 물을 주워 담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소[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

이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 사이의 신의와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겨운 시기에 떠나지 않고 곁에 같이 있어준 사람이 바로 귀인이 아닐까요.


채미현 박사·연세대 중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