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별 보며 출근하고 해 질 때 퇴근… 조선 시대 관리도 과로 시달렸죠
입력 : 2025.07.01 03:30
조선의 노동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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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수정전 전경. 과거 집현전이 있던 자리로, 세종 대 학자들이 밤낮없이 일하던 곳이었지요. /국가유산청
과거시험에 급제해서 관직에 오르는 것은 옛날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그렇지만 관리들의 업무 강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관리들은 묘시(새벽 5~7시)쯤 별과 달을 보며 출근한 뒤 유시(오후 5~7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휴일도 겨우 10일에 한 번 있었습니다. 아플 때 병가를 내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경조휴가(3년상)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숙직이나 초과 근무도 흔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조선에서도 '워커홀릭'들이 모여 있었던 시기가 세종 대였습니다. 조선에서 가장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왕궁은 초과 노동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세종은 누군가를 관직에 임명하면 그 사람에게 계속 일을 맡겼고, 잘못을 저질러도 벌을 받게 한 뒤 계속 일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하들은 탁월한 노하우를 갖출 수 있었지만, 문제는 사직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황희 정승입니다.
1427년 황희는 자신이 늙고 병들었으니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직서를 올렸는데 이때 그는 64세였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황희의 사직서보다도 더 긴 답장을 내렸지요. 왕에게 이런 답장을 받고 감격하지 않는 신하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황희는 아직 23년이나 더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습니다.
황희뿐만 아니라, 허조, 맹사성, 유정현 등등 세종 시대의 많은 대신들은 70살 넘어서까지 사직하지 못하고 일했습니다. 젊은 관리들도 과로에 시달렸습니다. 장영실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물론, 무관들의 사정도 비슷했습니다. 하경복은 10년 동안 함경도에서 근무했고, 김종서도 8년을 지냈습니다. 원래 2년마다 교체되어야 하지만 세종은 '그대만 한 인물이 없다'며 계속 일하게 했습니다.
이런 혹사의 굴레에서 임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세종은 즉위 20년 차가 되자 차츰 업무에 지쳤고 눈병, 다리 통증, 각종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자기 일을 덜어서 세자(훗날 문종)에게 시키려고 했지만, 신하들이 맹렬히 반대한 탓에 실패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왕과 세자가 권력을 나누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많았으니까요. 결국 왕과 신하 누구도 과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종은 만 52세라는 젊은 나이에 승하합니다. 세종 시대는 분명 조선의 전성기였고 많은 업적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만약 세종이 제때 자고 푹 쉬면서 '워라밸'을 지켰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왕권도 훨씬 더 안정적으로 문종과 단종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과 휴식을 잊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