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급발진 사고 원인 밝히는 열쇠… 5초간 모든 정보 저장해요
입력 : 2025.07.01 03:30
EDR(Event Data Rec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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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유재일
급발진 의심 사례가 경찰에 접수되면, 경찰은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사건을 조사해요. 도로 표면에 남겨진 타이어 자국(스키드 마크), 주변의 방범 카메라와 목격자 증언, 그리고 가속·브레이크 페달에 남은 신발 자국 등이 교통사고 조사에 활용되는 대표적인 정보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이 모든 것보다 결정적인 증거가 등장했어요. 바로 차량 내부에 숨겨진 사고 기록 장치인 EDR (Event Data Recorder) 데이터랍니다.
자동차 운행 정보 저장해요
차량 교통사고 조사에서 활용되는 EDR은 차량 운행 정보를 기록하는 시스템입니다. 사고 전후 약 5초 동안의 속도, 가속·브레이크 페달 조작 이력, 핸들 각도, 엔진 회전 수(RPM) 등의 정보를 저장하죠. 차량 외부 상황을 녹화하는 대시캠(차량용 블랙박스)과 달리, 차량 내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기록합니다.
EDR은 교통사고 원인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작년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역주행 참사의 경우 운전자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EDR 정보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나타났지요.
차량의 EDR은 일반적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센터 콘솔(기어봉과 팔걸이가 있는 부분) 안쪽에 숨어 있어요. 이곳에 EDR이 있는 이유는 차량이 어느 방향에서 충돌해도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사고가 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데이터를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죠. 심지어 차량에 전원이 끊어져도, EDR은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기 저장 장치(커패시터)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요.
그럼 사고가 발생했을 때 EDR은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EDR 시스템의 작동 과정은 총 4단계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데이터 수집 대기' 상태예요. EDR은 평소에도 차량 안의 여러 전자 제어 장치(ECU)에서 주고받는 정보를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여기엔 엔진 제어 장치나 변속기 제어 장치, 에어백 제어 장치 등이 포함되지요. 이 단계에서는 일정 시간 분량의 데이터를 임시 저장해 둡니다.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면 오래된 데이터를 덮어쓰는 것이지요.
둘째는 사고를 감지하는 단계입니다. 주행 중 차가 충돌을 감지하거나 에어백이 터지면, EDR 시스템이 활성화돼요. 국가나 제조사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의 법규는 에어백이 터졌거나 충돌 후 아주 짧은 시간(0.15초) 동안 차량 속도가 급격하게(8㎞/h 이상) 변했을 때 EDR이 데이터를 기록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와 같이 너무 작은 충돌까지 일일이 기록하지 않도록 기준을 둔 것이죠.
셋째는 데이터 저장 단계입니다. EDR은 사고가 발생하면 그 전후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임시 메모리가 아닌 특별한 저장 장치(비휘발성 메모리)에 정보를 저장하지요.
마지막은 사고 조사 단계예요. EDR에 기록된 정보는 차량 내부의 전자 장치끼리 주고받은 신호들이에요. 숫자 '0'과 '1'로 이뤄진 복잡한 디지털 코드(2진수)이지요. 따라서 이를 교통사고 조사에 활용하려면 전용 분석 도구를 사용해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문서로 바꿔야 해요. 이 문서엔 사고 발생 당시의 운행 정보와 다양한 수치들이 그래프로 표현돼 교통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증거물로 사용된답니다.
선박과 비행기에도 비슷하게 사고 기록을 저장하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선박은 VDR(Voyage Data Recorder), 비행기는 FDR(Flight Data Recorder)과 CVR (Cockpit Voice Recorder)이라고 부릅니다. 차량의 EDR과 다른 점은 이 장치들엔 음성도 함께 기록된다는 것이죠.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하며
지금의 EDR은 충돌 전후 약 5초 정도의 정보만 저장하고 있어서, 교통사고의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요.
특히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서,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졌습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사람의 실수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자율주행 시스템이 오작동한 건지를 밝혀내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최근엔 새로운 주행 데이터 기록 장치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DSSAD(Data Storage System for Automated Driving)'라고 불리는 장치로, 자율주행 시스템이 생성하는 디지털 데이터를 기록한답니다. 자율주행 시스템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을 6개월 이상 저장하거나, 기간과는 무관하게 2500건 이상의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죠.
자율주행차 시대에 발생할 새로운 형태의 교통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앞으로는 EDR뿐만 아니라 DSSAD와 같은 다양한 주행 기록 장치가 필요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