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위인과 정신건강] 슬픔을 캔버스에 담은 화가… 그의 생일은 '세계 조울증의 날' 됐죠

입력 : 2025.06.24 03:30

반 고흐

반 고흐가 1889년 그린 자화상. 귀에 붕대를 감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반 고흐가 1889년 그린 자화상. 귀에 붕대를 감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강렬한 색채, 거친 붓질, 소용돌이치듯 꿈틀대는 움직임. 고흐의 그림은 마치 생명을 지닌 듯한 힘으로 시선을 사로잡아요.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이지만,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그의 그림을 알아주는 이도 거의 없었고, 생전에 팔린 작품도 단 한 점뿐이었어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하고 조용한 아이였어요. 자연을 유난히 좋아해 들판과 숲속을 거니는 걸 즐겼고, 종종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곤 했지요. 한때는 목사가 되기를 꿈꾸며 신학을 공부했고, 벨기에의 탄광촌에서 자원 선교사로 일하기도 했지요.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스물일곱 살 때였습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그림에 몰두했지요. 고흐는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는 대신, 감정과 분위기를 그렸습니다. 농부의 손, 들판의 바람, 해바라기의 색, 별이 흐르는 밤하늘 같은 장면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지요.

하지만 고흐는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밤을 지새우며 몰입해 그림을 그리고, 해 뜰 무렵 겨우 잠들곤 했지요. "나는 밤이 낮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는 1888년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어요. 고흐는 조울증(양극성 장애)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밤낮이 뒤바뀐 생활은 그의 증상을 악화시켰고, 고흐의 정신은 기쁨과 절망, 들뜸과 무기력 사이를 오가며 점점 무너져 갔어요.

고흐는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화가 폴 고갱과 함께 지냈는데, 두 사람은 자주 부딪쳤어요. 결국 심한 다툼 끝에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을 일으켰고, 이후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죠. 그러나 그는 병원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어요. 병실 창문 너머로 바라본 밤하늘을 그린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이에요. 어둠을 꿰뚫는 소용돌이 같은 별빛과 꿈틀거리는 밤하늘 속에는 고흐의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지요.

그의 곁엔 언제나 동생 테오가 있었어요. 테오는 경제적으로 그를 도와주었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달래주던 존재였지요.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고백했어요. "나는 슬픔을 안고 그림을 그린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고통을 솔직히 받아들이며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1890년 여름, 고흐는 조용히 스스로 삶을 마감합니다. 서른일곱이라는 짧은 생이었지만, 그의 그림은 오히려 그 후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해바라기'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은 세계가 사랑하는 명작이 됐고, 세상은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빛을 그려낸 예술가로 그를 기억하죠.

그의 생일인 3월 30일은 오늘날 '세계 조울증의 날(World Bipolar Day)'로 지정돼, 마음의 병을 이해하고 편견을 줄이기 위한 날로 기념되고 있어요.
이헌정 고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