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가난·억압 피한 '아메리칸드림'… 백인도 한때 차별받아

입력 : 2025.06.18 03:30 | 수정 : 2025.06.18 04:33

미국 이민사

1620년 영국에서 박해를 받은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로 향하는 장면을 담은 19세기 그림. /위키피디아
1620년 영국에서 박해를 받은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로 향하는 장면을 담은 19세기 그림. /위키피디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있어요. 최근엔 시위를 막기 위해 주 방위군뿐 아니라 해병대까지 투입되며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본래 '이민자의 나라'로 불립니다.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이 건국 초창기부터 미국 사회를 구성해 왔지요. 그럼에도 미국은 시대와 정치적 흐름에 따라 이민자에 대한 포용과 배척을 반복해 왔고, 오늘날의 갈등도 이런 역사적 맥락 위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의 이민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떤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7세기부터 이주 시작돼

미국 이민의 출발점은 15세기 후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입니다. 그의 항해 이후 유럽 열강들은 북미 대륙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미국에 처음 이주해 온 이민자들은 서유럽 출신, 그중에서도 영국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7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시작했죠. 1607년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버지니아 식민지에 '제임스타운'이 세워졌어요. 이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들의 이민도 이어졌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매사추세츠에 도착한 이들은 영국 왕실의 종교 박해를 피해 신앙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지요. 이후 메릴랜드, 코네티컷, 뉴욕 등 동부 해안에는 식민지 13개가 차례로 설립돼 오늘날 미국의 기초가 형성됐습니다.

이 시기 정착민들은 생존을 위해 농경에 의존했습니다. 특히 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주요 기호품인 담배는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작물이었지요. 하지만 담배 재배에는 넓은 경작지와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식민지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사람들을 끌고 오기 시작했어요. 1619년 제임스타운에 도착한 아프리카인 20명을 시작으로 수십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북미로 보내졌습니다. 이들은 '강제 이주'라는 형태로 미국에 오게 됐지만, 오늘날에는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인종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지요.

굶주림과 억압 피해 미국으로

미국으로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인구 증가와 경제 불황, 정치적 불안 속에 있었고, 미국은 넓은 땅과 새로운 일자리를 내세워 이민자들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죠.

1830년 전후부터 유럽 각지에선 수많은 이민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1840년대 중반 약 100만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이 발생했고 이때 굶주림을 피해 수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했어요. 이 외에도 독일, 프랑스, 북유럽에서도 가난과 정치적 억압을 피해 많은 이가 미국으로 향했죠. 이들은 주로 미국 북부의 공장 지대에 정착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에 온 이민자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품었지요. 이 이상은 훗날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세기 중·후반으로 가면 미국의 서부 개척과 대형 인프라 건설이 본격화되며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이민자들과 중국 등 동아시아 이민자들도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지역별로 이민자 커뮤니티를 만들었지만, 투표권을 비롯한 법적·정치적 권리는 철저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엔 주로 이탈리아·러시아·폴란드 등 남·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농촌 지역 출신으로, 영어도 서툴고 가톨릭이나 동방정교 신자가 많았지요. 당시 미국 사회 주류였던 영국계 프로테스탄트(개신교) 백인들과는 언어·종교·외모·문화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역시 백인임에도 인종 차별의 대상이 됐어요. 이들은 '중간 인종' '견습 백인' 등 멸시적인 표현으로 불리며 비문명인처럼 여겨졌습니다. 많은 이민자가 도시 빈민가에 밀집해 살았고, 일부 이탈리아계 이민자는 마피아 조직과 연결되면서 전체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지요.

이처럼 이민자가 급증하자 미국 정부는 19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이민을 제한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반(反)독일 감정이 고조됐어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두려움이 겹치면서 미국 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이민자들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1924년 새로운 이민법을 제정했어요. 이 법은 국가별로 이민자 수를 제한하는 '이민 쿼터제'를 두었고, 아시아 출신 이민자는 아예 받지 않는 차별적인 조항을 담고 있었어요. 당시 미국이 유지하고자 한 '백인 중심의 질서'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뚜렷한 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시아계와 라틴아메리카계 노동자들은 구조적인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야 했지요.

이 차별적 조항은 시민권 운동과 인권 의식의 성장 속에서 1965년 이민법이 개정되며 폐지됐어요. 미국은 다시 이민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이후 이민자는 양적으로도 급증했고, 출신 지역도 다변화됐습니다. 미국이 더욱더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지요.

한인 3분의 1은 캘리포니아에

이민법이 개정되자 한국인의 미국 이민도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70~80년대는 미국 이민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어요. 당시 김포공항에서 LA로 가는 항공 노선이 생겼고, 덕분에 이민을 떠난 많은 한국인이 LA에 정착했지요. 현재도 미국에 있는 한인 약 200만명 중 3분의 1 정도가 LA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는 한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이민자 수는 다소 줄었지만 의사나 엔지니어, 연구직 등 전문직 중심의 이민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1876년 12월 9일 미국 시사 잡지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삽화. 흑인(왼쪽)과 아일랜드인(오른쪽)이 앉은 저울이 균형을 이루게 묘사해 둘의 지위가 비슷함을 강조했어요. /미 의회도서관
1876년 12월 9일 미국 시사 잡지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삽화. 흑인(왼쪽)과 아일랜드인(오른쪽)이 앉은 저울이 균형을 이루게 묘사해 둘의 지위가 비슷함을 강조했어요. /미 의회도서관

1915년 미국 뉴욕 허드슨강 하구에 있는 엘리스섬에 도착한 이민자들 모습. 미국 이민자들은 한때 이곳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어요. /미 의회도서관
1915년 미국 뉴욕 허드슨강 하구에 있는 엘리스섬에 도착한 이민자들 모습. 미국 이민자들은 한때 이곳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어요. /미 의회도서관
마피아 영화 ‘대부’의 한국 포스터. 20세기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문이 범죄를 통해 세력을 키워가는 이야기지요. /네이버 영화
마피아 영화 ‘대부’의 한국 포스터. 20세기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문이 범죄를 통해 세력을 키워가는 이야기지요. /네이버 영화
정세정 옥길새길중학교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