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안다 박수'와 침묵의 여운 사이, 클래식의 즐거움 있죠
입력 : 2025.06.16 04:39
클래식 공연장의 에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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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3년 독일 명지휘자 헬무트 릴링이 고음악 전문 악단인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와 내한해 바흐와 모차르트의 종교곡을 연주한 뒤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 종교곡은 연주 도중에는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연주가 끝난 뒤에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화클래식
이를 깜빡 잊거나 몰랐던 관객이 악장이 끝난 뒤에 박수를 보내는 것을 '중간 박수'라고 부릅니다. 심한 경우에는 12개의 악장이 끝날 적마다 박수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12번의 박수를 들어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음악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귀만 얼얼해졌지요. 과연 클래식 공연장의 에티켓은 어떻게 변모해 왔을까요.
중간 박수, 곡 끝나자마자 박수는 결례
반대로 '안다 박수'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고상한 사자성어(四字成語) 같지만 실은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부 관객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현상을 뜻합니다. '나는 이 곡이 언제 끝날지 알고 있다'는 걸 자랑하려는 심리에서 나온 것으로 비슷한 말로는 '안다 브라보'도 있습니다.
사실 말러와 쇼스타코비치 같은 웅장한 대편성 교향곡이 끝나자마자 터지는 '안다 박수'는 활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반대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이나 말러 교향곡 9번처럼 조용히 끝나는 곡들은 여운을 즐기기 위해서 잠시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장장 3시간 동안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바흐의 종교곡을 연주했는데, 끝나자마자 관객 한 명이 그 모든 영광(?)을 가로채려는 듯 '안다 브라보'를 외치면 얄미워지기 마련입니다.
요즘에는 휴대전화 벨소리야말로 공연장 에티켓을 깨뜨리는 '공공의 적'입니다. 공연장에서 문자 알림음은 물론이고, 교통 안내 내비게이션 음성까지 울려 퍼지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심경이 들지요.
300년 전 공연장에선 침 뱉고 방뇨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건 17~18세기 무렵입니다. 그 이전에는 궁정이나 귀족 중심이었지요. 당시 공연장 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관객들이 주로 서서 관람하는 1층을 뜻하는 '파테르(parterre)'에는 변호사와 장교는 물론, 학생과 점원, 견습생 같은 서민층도 많았습니다.
당시 기록들을 보면 극장 1층의 파테르에서 떠드는 건 기본이고,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심지어 개가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침을 뱉거나 트림을 하기도 했고, 심할 경우에는 방뇨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요. 당연히 사회적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당시 극장 에티켓 준수를 강조했던 인물이 '삼총사'에서 악당으로 묘사되는 프랑스의 리슐리외(1585~1642) 추기경입니다. 음악학자 이경희의 '음악 청중의 사회사'에는 18세기 유럽 공연장의 에티켓 안내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판단할 만한 사람이 박수를 치거나 비난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문구입니다. '안다 박수'와 '중간 박수'를 삼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입니다.
100년 전 한국도 '조용한 공연' 낯설어
서양 클래식 음악이 본격적으로 상륙했던 100여 년 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처럼 전문 공연장이 없었던 일제강점기에는 강당과 예배당, 호텔과 백화점, 단성사 같은 영화관에서 음악회가 열렸지요. 당시에는 전용 음악당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관객들은 음악 감상을 위해서 조용히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관습이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근대 음악사 연구자인 조윤영씨의 '음악적 경성'에는 당시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음악회 도중에 잡담은 기본이고, 소리를 지르고 사회자나 연주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지요. 담배를 피우며 돌아다니거나 우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기도 했답니다.
근대 들어 '클래식은 교양' 인식 확산
하지만 18세기 유럽이나 20세기 초엽 한국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넓은 의미의 인문 교양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연장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대적 오케스트라의 효시로 꼽히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장에는 지금도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진지한 즐거움은 중대한 일(Res severa verum gaudium)'이라는 고대 로마 시대의 경구라고 하지요. 음악당이 단지 가벼운 엔터테인먼트의 장소가 아니라 진지하게 예술을 음미하고 감상하는 공간이라는 걸 일러줍니다. 더불어 바흐와 멘델스존이 활동했던 음악 도시 라이프치히의 자부심과 긍지도 느낄 수 있지요.
지나치게 박수 제한하면 즐거움 사라져
하지만 예의범절을 자칫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음악 본연의 즐거움이 반감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심지어 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1915~1997)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5번 1악장이 끝난 뒤 '중간 박수'가 터지지 않자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지요. "1악장이 끝났는데 여느 때와 달리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청중이 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다행히 곡이 모두 끝났을 때는 객석의 반응도 뜨거웠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연장의 에티켓 역시 동서고금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닙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명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52)는 박수를 지나치게 제한하려는 태도를 '박수의 금욕주의', 반대로 시도 때도 없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박수의 무정부주의'에 빗대기도 했지요. 똑같은 '중간 박수'에도 이탈리아인들은 박수 인심이 후하다고 여기는 반면, 독일인들은 교양 없다고 본다고도 합니다. 과연 어디에 정답이 있을까요. 호프는 "음악을 더 많이 알아 나가고 음악회에 익숙해질수록 청중도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결론을 내립니다. 무대 위의 연주자뿐 아니라 객석의 청중이 보내는 박수 역시 엄연히 공연의 일부라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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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공연장의 파이프오르간 아래 ‘진지한 즐거움은 중대한 일(Res severa verum gaudium)’이라는 고대 로마 경구가 새겨져 있어요. 공연장이 진지하게 예술을 음미하는 공간이라는 걸 일러줍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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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런던의 대표적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의 마지막 날 공연 풍경. 축제 마지막 날에는 관객들이 영국과 세계 각국의 국기를 흔들고 환호하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지요.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