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반 고흐가 간질 치료에 복용… '가셰 박사의 초상'에도 등장하죠

입력 : 2025.06.16 04:39

디기탈리스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통 모양으로 피는 디기탈리스는 흰색, 분홍색, 황색 등 다양한 색이에요. /김민철 기자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통 모양으로 피는 디기탈리스는 흰색, 분홍색, 황색 등 다양한 색이에요. /김민철 기자
요즘 도심 화단에 긴 꽃대에 화려한 꽃을 줄줄이 달고 있는 식물이 있습니다. 키도 크고 꽃도 화려해 이름이 뭘까 절로 궁금해지는 식물입니다. 꽃이 딱 손가락 들어갈 만한 크기라면 디기탈리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디기탈리스는 유럽 원산의 질경잇과 식물로, 6~8월 도심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입니다. 높이 1m 정도 자라는데, 줄기 아래서부터 꽃이 차례로 피어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이 이삭 모양으로 핀다고 이런 꽃차례를 이삭꽃차례라고 합니다.

꽃은 통 모양으로 흰색, 홍자색, 분홍색, 황색 등 다양한 색으로 핍니다. 꽃이 핀 모양이 종(鐘)이 차례로 매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꽃잎 안쪽엔 작은 반점들이 점점이 있습니다. 곤충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장치죠. 요즘 이 반점을 보고 꿀벌이 찾아와 열심히 꿀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꽃을 볼 때마다 꽃 속에 손가락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의 크기가 딱 손가락 하나 넣기 좋은 정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이 꽃의 속명 'Digitalis'는 라틴어 'digitus'에서 유래했는데 '손가락'이라는 뜻입니다. '디지털 시대' 할 때 '디지털'과 같은 어원인데 발음만 다르게 한 것입니다.

디기탈리스 잎은 우글쭈글한 주름에 잔털이 있습니다. 이 잎을 전부터 유럽에서 약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잎은 강력한 약효와 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독성의 경우 서양에서는 이 식물의 잎을 이용해 살인을 시도하는 사건이 꽤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도 종종 디기탈리스가 효과적이고 감쪽같은 살인 도구로 나옵니다. 장난으로라도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이 식물은 심장병 등에 약효를 가져 '심장병풀'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습니다. 약효와 관련해 화가 고흐와 관련한 스토리가 유명합니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 '별이 빛나는 밤' 등은 실제보다 더 노란빛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고흐는 생전에 간질과 조울증 증세를 보였는데 그의 주치의인 가셰 박사는 디기탈리스를 처방했다고 합니다. 고흐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이란 그림에서 가셰 박사가 디기탈리스를 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식물을 약으로 복용하면 눈앞이 뿌옇거나 노랗게 보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많은 연구자가 고흐 그림 속 노란빛이 강한 것은 이 디기탈리스 복용의 부작용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반 고흐가 자신의 주치의를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테이블에 놓인 꽃이 디기탈리스입니다. /위키피디아
반 고흐가 자신의 주치의를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테이블에 놓인 꽃이 디기탈리스입니다. /위키피디아

김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