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물처럼 흐르고 생분해되기도… 입거나 붙이는 배터리의 세계

입력 : 2025.06.03 03:30

진화하는 배터리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도로 위에서 조용히 달리는 전기차, 요즘은 정말 자주 만날 수 있지요? 전기차처럼 전기를 사용해 작동하는 기기는 우리 일상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요. 최근엔 옷처럼 입는 웨어러블 기기, 물속을 유영하는 로봇처럼 다양한 전자기기가 등장하며 배터리도 새로운 모양으로 진화하고 있답니다. 과학자들은 물처럼 흐르고, 땅에서 썩는 배터리도 개발했어요. 오늘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배터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액체 배터리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작년 11월 해파리처럼 유연하게 물속을 헤엄치는 로봇을 선보였는데요. 이 로봇엔 아주 특별한 배터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배터리의 이름은 '레독스 흐름 전지'예요. 액체가 순환하며 전기를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배터리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전기차에서 흔히 사용하는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입니다. 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전해액, 분리막으로 구성돼 있어요. 분리막에 미세 구멍이 나 있는데, 전해액 속에 있는 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자가 흐르게 되고 그 결과 전기가 발생합니다.

'레독스 흐름 전지'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이온의 이동으로 전류가 흘러요. 하지만 작동 방식이 다르죠. 이 배터리 안엔 '음극액'과 '양극액'이라는 두 가지 전해액이 들어 있어요. 이 두 액체는 배터리 안에서 얇은 분리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배치됩니다. 분리막엔 미세한 통로가 있어 전해액 속 이온이 오가는데, 이를 통해 전류가 흐르게 됩니다.

음극액과 양극액은 또 다른 호스를 통해 해파리 로봇 몸체와 연결돼 있는데요, 로봇 안에 장착된 펌프가 이 액체들을 밀어내면서, 로봇 몸체를 계속 순환하게 만들죠. 이 방식은 마치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액을 온몸으로 순환시키는 원리와 비슷해요. 혈액이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듯, 전해액이 순환하면서 로봇이 움직일 수 있죠.

이 배터리는 전해액을 밀어내는 펌프의 힘이 곧 로봇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해요. 덕분에 별도의 전기 모터나 구동 장치를 달지 않아도 되니, 로봇을 더 가볍고 단순하게 설계할 수 있어요.

연구팀은 이 배터리를 이용해 만든 로봇으로 해양 환경과 해저 생물을 잘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해파리 로봇은 자연스럽게 헤엄을 치는 데다, 소음도 적죠. 그래서 물속 생물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큰 장점이에요.

치약처럼 짜서 쓰는 배터리

스웨덴 린셰핑대의 연구팀은 치약처럼 '짜서 쓰는' 배터리를 개발했어요. 이 배터리는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어디든 쉽게 부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그래서 팔에 붙이는 의료 기기나 옷처럼 입는 웨어러블 전자 기기처럼 움직임이 많은 기기에 잘 어울리는 배터리에요.

이 배터리의 핵심 재료는 두 가지예요. 첫째는 '전도성 고분자'입니다. 이는 전기가 잘 통하는 특수한 플라스틱이에요. 배터리에서 전기를 모았다가 흘려보내는 전극 역할을 하지요. 다른 하나는 '리그닌'이라는 물질인데요. 리그닌은 나무에 들어 있는 자연 성분으로, 특수 처리하면 전류를 흐르게 하는 데 필요한 '전해질'로 사용할 수 있지요.

연구팀은 먼저 전도성 고분자와 리그닌을 잉크처럼 흐르는 젤 형태로 가공했어요. 그런 다음 두 물질을 섞어 반죽처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이온의 이동을 도와주는 촉매제를 섞어 각각 양극 반죽과 음극 반죽을 만들었어요. 그다음 양극 반죽과 분리막, 음극 반죽을 마치 햄버거처럼 층 구조로 쌓아 올려 배터리를 만들었어요.

완성된 배터리는 얇은 검은색 비닐처럼 생겼는데, 유연하고 부드러워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어요. 연구팀은 이 배터리를 웨어러블 기기나 인체 삽입형 의료 기기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자연에서 분해되는 친환경 배터리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친환경 배터리'도 있어요. 싱가포르 기업 '플린트'가 만든 '종이 배터리'입니다. 배터리 몸체는 얇은 셀룰로오스 종이입니다. 셀룰로오스는 나무에서 추출한 천연 섬유로, 분해가 잘되는 친환경 소재예요. 과학자들은 셀룰로오스로 만든 종이 앞뒤에 '하이드로겔'을 발랐습니다. 전해액 역할을 하지요.

하이드로겔 위로 한쪽에는 망간 산화물을, 반대쪽에는 아연 가루를 발랐어요. 망간은 양극, 아연은 음극 역할을 합니다. 즉, 종이가 배터리의 몸체이면서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분리막 역할도 함께 하는 거예요. 전극이 외부에 직접 노출되지만, 감전 위험은 매우 낮다고 알려져 있어요.

종이 배터리도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어서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 센서처럼 유연성이 필요한 전자기기에 쓸 수 있어요. 종이를 사용했기 때문에 배터리를 다 쓴 뒤 땅에 묻으면 6주 정도 이후 자연적으로 분해되지요.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