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콘클라베'와 달리 투표 안 해… 환생자 찾아 계승하죠

입력 : 2025.05.28 03:30

달라이 라마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의 제14대 달라이 라마. /자유티베트 홈페이지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의 제14대 달라이 라마. /자유티베트 홈페이지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후대 교황을 뽑는 절차인 '콘클라베'가 큰 주목을 받았어요. 추기경들의 비밀투표 방식인 콘클라베를 이번 계기로 알게 됐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콘클라베처럼 독특한 지도자 승계 방식을 갖고 있는 종교가 또 있어요. 바로 티베트 불교입니다.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14대째 이어져 오고 있어요. 현 달라이 라마는 1935년생으로 올해 90세입니다. 선종한 교황보다 한 살 더 많지요. 최근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티베트 불교의 후계 구도도 주목받고 있어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닙니다. 민족의 정체성과 정치적 상징까지 겸한 인물입니다. 오늘은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가 어떤 의미인지와 후계 선정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티베트의 종교·정치 지도자

티베트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릴 만큼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어요. 지금은 중국 영토에 속해 있지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전한 불교의 한 분파입니다. 티베트 인구의 대다수가 믿는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 정체성의 핵심이랍니다. 따라서 후계자를 뽑는 일은 티베트의 미래와도 직결된답니다.

'달라이 라마'는 무슨 뜻일까요?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해요. 16세기 몽골 부족의 지도자였던 알탄 칸이 티베트 불교의 승려 소남 갸초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는데, 감명받은 칸은 그에게 '지혜가 바다처럼 깊은 스승'이라는 의미로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해요. 티베트어 '갸초' 또한 '바다'라는 의미인데, 깨달음이 바다처럼 깊다는 의미로 사용돼요. 달라이 라마는 처음엔 종교 지도자 역할이었지만, 17세기 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인 '겔룩파'가 티베트 전역의 종교·정치권력을 통합하면서 정치 지도자 역할도 함께 하게 됐습니다.

환생자 찾아 후계자로 임명

그렇다면 달라이 라마는 어떻게 후계자를 정할까요? 가톨릭의 '콘클라베'처럼 투표를 통해 뽑는 게 아니라 후계자를 찾아내는 방식이에요.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은 환생한다고 믿지요. 그런데 티베트에선 달라이 라마 같은 인물은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해탈하지 못한 중생을 돕기 위해 자의로 환생했다고 여겨요. 이런 특별한 환생자를 티베트어로 '뚤꾸'라고 하는데, 이는 '부처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집니다. 화신은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지요. 달라이 라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의 뚤꾸입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나면, 그의 환생자를 찾는 과정이 시작돼요. 그렇게 찾아낸 환생자가 바로 다음 달라이 라마가 되는 거지요.

환생자를 찾는 과정이 힘든데요. 먼저 티베트 불교의 명망 높은 승려들이 '라모라초'라는 호수로 가 오랜 시간 기도와 명상을 해요. 때로 호수 표면에 지명처럼 보이는 글자나 특정한 장면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걸 단서로 삼아 승려들이 티베트 전역으로 흩어져 환생한 아이를 찾아 나서죠. 이 과정에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후보가 될 만한 아이가 나타나면 달라이 라마가 소유했던 물건을 다른 물건들과 섞어서 나열해 놓고 골라 보게 합니다. 전생에 익숙했던 물건을 고르게 하는 것이죠. 그래도 확실한 후보가 안 나오면 후보자들을 티베트 수도 라싸로 데려가 제비뽑기를 하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들은 전생을 이야기하는 등 환생자라는 점을 확신시키는 행동을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는 1935년 티베트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어요. 1933년 제13대 달라이 라마인 툽텐 갸초가 열반한 뒤 티베트 불교에선 그의 환생자를 찾기 위해 전국에 고승들을 보낸 상황이었죠. 특사들이 여러 개의 지팡이와 염주를 들고 그의 집에 방문했는데, 그중엔 전대 달라이 라마의 유품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이 중에서 정확히 유품을 집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는 1937년에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받았어요.

후계자 문제로 중국과 갈등

요즘 티베트 사람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다음 달라이 라마를 중국 정부가 정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에요. 티베트는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독립을 선포하고, 자체 정부를 운영했어요. 하지만 1950년 중국의 침공을 받았고 이듬해 강제 통합됐어요. 티베트인들은 시위를 하면서 중국을 몰아내려 했지만 중국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죠.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티베트 불교 서열 2위인 '판첸 라마'가 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달라이 라마는 판첸 라마의 환생자를 인정하죠.

1995년 달라이 라마는 전통 절차에 따라 11대 판첸 라마를 지명했지만, 얼마 뒤 갑자기 실종되고 말아요. 중국 정부는 대신 공산당원을 부모로 둔 소년을 11대 판첸 라마로 지명합니다. 만약 현 달라이 라마가 열반하면 중국이 그 후계자를 자국 정부에 협력적인 사람으로 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거예요. 달라이 라마 측은 중국이 임명한 판첸 라마가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한다며, '가짜 판첸 라마' 혹은 '관제 판첸 라마'라고 비난하고 있어요.

현재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그는 최근 출간된 저서에서 자신의 후계자가 중국 밖에서 나올 것이라고 밝혔어요. 자신이 사망한 후에도 달라이 라마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려면 환생자가 '자유 세계'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설명했지요. 그가 열반한다면 티베트 불교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 내 티베트 지역을 표시한 지도예요. 티베트는 1951년 중국에 합병된 뒤 ‘티베트 자치구’로 전환됐어요.
중국 내 티베트 지역을 표시한 지도예요. 티베트는 1951년 중국에 합병된 뒤 ‘티베트 자치구’로 전환됐어요.

소남 갸초의 초상화.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사용한 인물입니다. /위키피디아
소남 갸초의 초상화.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사용한 인물입니다. /위키피디아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거주하던 곳이에요. /위키피디아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거주하던 곳이에요. /위키피디아
정세정 옥길새길중학교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