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산 이야기] 퇴계 이황에게 깨달음 준 산… 늦봄 피는 철쭉으로 유명해요
입력 : 2025.05.26 03:30
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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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드럽게 뻗은 소백산 주 능선에 철쭉이 피어있어요. 해발 1000m 이상 높이에서 자라는 철쭉은 도시 철쭉보다 색깔이 연해요. /영상미디어
소백산(小白山)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이름이 1000년 넘게 이어져 올 정도로 중부 지역의 뿌리 깊은 명산이에요. 경북 영주의 향토사학자들에 따르면 '작은 백두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해요.
봄이면 꽃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지도 모릅니다. 1000원 지폐의 주인공 퇴계 이황(1501~1570)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소백산 기슭의 풍기(오늘날 영주) 군수로 왔을 때 소백산을 오르고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이라는 산행기를 남겼습니다. 5월에 4박 5일 동안 소백산 여행에 나섰는데, 여정 첫날 소수서원에 도착해 유생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둘째 날엔 죽계 계곡을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이때 퇴계는 계곡을 지나며 아름다운 폭포나 명소를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붙였어요. 이를 '죽계구곡(9곡)'이라고 합니다.
당시 양반들의 등산 문화는 지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상을 목표로 하기보단 산 계곡에 있는 넓고 평평한 마당바위에 앉아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풍류 문화'였지요. 하지만 퇴계는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지 않고 조촐히 소백산을 찾았어요.
퇴계는 말을 타고 산기슭에 있는 초암사에 도착한 뒤 이후에는 걷거나 가마를 탔어요. 그리고 봉바위 인근에 있는 석륜사에 들러 하룻밤을 보내고 산을 올랐는데요. 이곳에서부터 퇴계는 "산길을 곧바로 올라가자니 사람이 절벽에 매달린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힘을 다하여 당기고 밀면서 올라갔다"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당시 48세였던 퇴계는 운동을 생활화한 무신이 아닌 문신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소백산 산행은 '원정 등반'에 가까운 도전이었습니다.
퇴계가 국망봉(1420m)에 올랐을 때 안타깝게도 구름이 끼어 시야는 깨끗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럼에도 퇴계는 이 순간을 "등산의 묘미는 꼭 눈으로 경치를 보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식물을 살폈어요. 떠올려 보세요. 높은 백두대간 능선에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아 기울어지고 왜소한 식물들을요. 퇴계는 봄이 끝나가서야 초록빛이 돋기 시작한 혹독한 능선의 식물을 보며 "깊은 숲에서 쑥쑥 자라는 나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했어요. 이런 깨달음을 얻어 퇴계는 "나무나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체질이나 성품이 바뀌는 것은 똑같다"고 했답니다. 이번 주말엔 퇴계가 그랬던 것처럼 소백산을 피부로 느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