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 스칼라', 투란도트·나비 부인 초연된 곳이죠

입력 : 2025.05.26 03:30

세계 명문 오페라 극장

최근 정명훈이 음악 감독으로 선임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240여 년 역사의 이 극장에서 베르디와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들이 초연됐어요. /위키피디아
최근 정명훈이 음악 감독으로 선임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240여 년 역사의 이 극장에서 베르디와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들이 초연됐어요. /위키피디아
최근 지휘자 정명훈(72)이 240여 년 역사의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차기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오페라 극장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세계 명문 오페라 극장들은 어떤 곳이 있을까요. 오늘은 '오페라 명가(名家)의 조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베르디·푸치니의 오페라 초연한 라 스칼라


중요한 기준은 우선 초연작(初演作)입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작품이 초연됐는지를 살펴보면 극장의 권위와 전통을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오페라 역사의 '족보'와도 같습니다.

라 스칼라에서는 벨리니의 '노르마'(1831년), 베르디의 '나부코'(1842년)와 '오텔로'(1887년), 푸치니의 '나비 부인'(1904년)과 '투란도트'(1926년) 등이 처음으로 빛을 보았습니다. 이 극장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갓집이나 총본산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라 스칼라(La Scala)라는 이름은 예전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성당 자리에 건립된 사실에서 비롯했지요.

이탈리아에서 라 스칼라에 버금가는 초연 기록을 갖고 있는 명문 극장이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La Fenice)입니다. 라 페니체는 이탈리아어로 '불사조'라는 뜻이지요. 수차례 거듭된 화재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건립된 극장의 굳센 생명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리골레토'(1851년)와 '라 트라비아타'(1853년) 같은 베르디의 중기 걸작들이 이 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20세기에도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각'(1951년), 벤저민 브리튼의 '나사의 회전'(1954년) 같은 현대 작품들을 초연하면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요. 흥미롭게도 라 스칼라와 라 페니체는 이탈리아에서 지휘자 정명훈이 가장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극장들이기도 합니다.

독일 뮌헨·드레스덴은 바그너 오페라 초연

독일 오페라에서 비슷한 역사적 권위를 지닌 극장이 뮌헨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베를린 슈타츠오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극장 등입니다. 슈타츠오퍼(Staatsoper)는 '국립 오페라 극장'이라는 뜻입니다. 과거 궁정 극장들이 왕정 폐지 이후 자연스럽게 국립 오페라 극장으로 전환되었지요. 드레스덴은 특이하게도 '젬퍼(Semper)'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1803~1879년)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뮌헨 바이에른 극장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1781년),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865년)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1868년)의 초연 기록을 갖고 있지요. 2007년 한국 작곡가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됐습니다. 드레스덴 젬퍼 극장 역시 바그너가 지휘자를 지낸 인연으로 작곡가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1843년)과 '탄호이저'(1845년) 등이 초연됐지요.

역대 지휘자 명단도 중요한 잣대

초연작 못지않게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역대 지휘자 명단입니다.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거장)들이 거쳐갔는지 살펴보면 극장의 무게감을 유추할 수 있지요. 베를린 슈타츠오퍼는 극장이 있는 베를린 중심가의 이름을 따서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극장'으로도 불립니다. 20세기 들어서 에리히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거장들이 이 극장을 이끌었지요.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기 전에 이 극장의 음악 감독을 거쳤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도 독일 통일 직후인 1992년부터 무려 30년간이나 이 극장을 이끌었지요. 지금은 독일 출신의 명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드레스덴을 거쳐서 베를린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매년 270여 회 공연하는 빈 오페라 극장

오페라와 발레 작품들을 매년 얼마나 활발하게 무대에 올리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척도가 됩니다. 만약 오페라 극장을 '공장'에 비유하면 '공장 가동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기준에서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오페라 대공장'은 오스트리아의 빈 슈타츠오퍼입니다. 이 극장 역시 작곡가 겸 지휘자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지휘자 카라얀과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이 거쳐간 오페라 명문이지요. 또한 지금도 매년 오페라와 발레 공연만 270여 회씩 열리는 '불이 꺼지지 않는 극장'이기도 합니다. 한국 오페라 극장들이 혈세를 들여서 번듯하게 지어놓고도 가동률이라는 점에서는 낙제점을 면하지 못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지요.

英佛은 수도 중심, 獨伊는 지방 분권형

얼핏 오페라는 정치나 역사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페라 극장은 각국의 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통일 국가를 일찍 이룬 영국과 프랑스는 오페라 극장도 자연스럽게 수도인 런던과 파리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통일이 늦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오페라 극장도 지방 분권형으로 발전했지요. 독일은 수도 베를린 못지않게 뮌헨이나 드레스덴의 극장들도 전통과 권위를 자랑합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역시 로마 오페라 극장보다 오히려 밀라노와 베네치아의 오페라 극장이 더욱 잘 알려져 있지요.

유럽 극장은 국공립, 미국은 민간 중심

유럽의 오페라 극장들은 대부분 국공립인 데 비해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민간 후원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차이입니다. 장단점이 모두 있습니다. 국공립은 비효율과 낭비라는 뭇매를 맞기 쉽고, 민간 중심은 경제 위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카고의 리릭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을 흔히 '미국 3대 오페라 극장'으로 부릅니다. 여기에 로스앤젤레스·휴스턴을 포함해서 5대 극장으로 보기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의 100여 년 역사상 첫 동양인 감독이자 첫 여성 감독이 바로 현재 음악 감독인 지휘자 김은선(44)씨입니다. 한국 지휘자들이 세계 명문 오페라 극장들로 속속 진출한다고 볼 수 있지요.
2008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피아니스트 랑랑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2번을 협연했어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 극장의 단원들로 구성된 악단입니다. /성남아트센터
2008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피아니스트 랑랑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2번을 협연했어요.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 극장의 단원들로 구성된 악단입니다. /성남아트센터
독일의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의 야경.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따서 '젬퍼 극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위키피디아
독일의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의 야경.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따서 '젬퍼 극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위키피디아
지휘자 김은선은 100여 년 역사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 음악 감독으로 임명됐어요.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김은선은 100여 년 역사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 음악 감독으로 임명됐어요. /베를린 필하모닉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