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줄기세포 배양해 만든 '미니 장기', 동물실험 대신해요

입력 : 2025.05.20 03:30

오가노이드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지난 16일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한국인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실렸어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최영기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소장과 구본경 유전체 교정연구단 단장이 진행한 연구였는데, 한국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유래한 '오가노이드(organoid)'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어요. 오가노이드는 실제 장기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미니 장기'예요.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들죠.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에 많이 활용되고 있답니다.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나 사스(SARS) 같은 심각한 감염병 중 75% 정도는 동물에게서 유래한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박쥐는 메르스(MERS)나 에볼라처럼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로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박쥐를 연구하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감염병을 막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문제는 실험에 사용할 많은 박쥐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윤리적인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박쥐의 장기를 모사한 오가노이드를 만든 것이랍니다.

연구팀은 박쥐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오늘은 오가노이드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실험실에서 만든 '미니 장기'

처음 오가노이드라는 말을 쓴 건 네덜란드 과학자 한스 클레버스 박사예요. 클레버스 박사는 2009년 생쥐의 직장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배양해 '미니 장기'를 만들었어요. 지금은 사람의 줄기세포로 뇌, 간, 폐, 췌장, 위 같은 다양한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게 됐답니다.

그럼 오가노이드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오가노이드를 만들려면 먼저 사람 피부나 혈액 같은 조직에서 '체세포'를 채취해야 해요. 체세포는 정자나 난자 같은 생식 세포가 아닌, 우리 몸의 조직을 이루고 있는 세포랍니다. 다음에는 '역분화' 기술을 이용해 채취한 체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립니다. 줄기세포는 다양한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예요. 아직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세포라고 생각하면 쉽죠. 원래 줄기세포는 분화 과정을 거쳐 피부 세포나 간세포, 심장 세포처럼 각각 다른 일을 하게 되는데, 역분화는 이 과정을 거꾸로 되돌리는 기술이에요. 체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한 뒤 배양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죠.

역분화로 얻은 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미니 장기처럼 키울 수 있어요. 이때 장기 구조와 유사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세포에 단백질과 성장인자(신호 물질) 등을 공급해 줘야 합니다. 3D 프린팅 기술도 활용해요. 3D 프린팅 기술로 만든 틀에 세포를 넣어 키우면 원하는 모양의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이렇게 만든 오가노이드는 실제 장기와 달리 아주 작아요. 예를 들어, 뇌 오가노이드는 완두콩 정도 크기예요. 심장 오가노이드 중에는 지름이 0.5㎜밖에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작고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 몸속에 이식해서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대신 신약 개발이나 질병 연구, 인공장기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널리 활용되고 있답니다.

최근에는 여러 오가노이드를 하나로 연결해 실험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어요. 사람 몸에서는 장기가 각각 따로 작동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항암제를 복용하면 장에서 흡수되고 간에서 여러 처리 작용을 거친 뒤 신장을 통해 배출돼요. 따라서 실제 약물이 몸속에서 작용하는 과정을 정확히 확인하려면 장과 간, 신장 등의 장기를 하나로 연결한 오가노이드 구조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최근엔 국내외에서 여러 장기 오가노이드를 하나로 연결한 '다중 오가노이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실제 사람의 몸과 유사한 시스템을 만들어서 효과를 측정하는 거죠.

실험용 동물 생명 구해요

신약이나 치료제를 만들 때는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에 먼저 동물에게 실험해요. 약의 효능이나 독성, 부작용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죠. 사람과 동물은 겉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유전체(DNA)만 놓고 보면 생각보다 비슷하답니다. 동물실험에서 많이 사용하는 생쥐의 경우 인간과 유전체가 95% 정도 비슷해요. 이 때문에 세계에서 매년 2억 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사용돼 목숨을 잃는다고 해요. 2023년 기준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동물만 약 450만마리에 달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신약 개발에서 필수로 요구했던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고, 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물 대상 실험 폐지가 가능한 것도 오가노이드 기술의 발달 덕분이에요.

또한 오가노이드는 동물실험보다 시간과 비용이 덜 듭니다. 오가노이드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데는 보통 2~3주가 걸립니다. 실험동물을 키우고 관리하는 것에 비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거죠. 실험동물에 따라 달라지지만 비용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해요. 이번에 한국 연구자들이 만든 박쥐 장기 오가노이드처럼 실험용으로 구하기 힘든 동물을 오가노이드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윤리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거죠.

☞오가노이드(organoid)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미니 장기'. 실제 장기와 기능이 유사해요. 장기라는 뜻의 영어 단어 'organ(오르간)'과 비슷함을 뜻하는 접미사 'oid(오이드)'의 파생어예요. 최근 신약 실험, 질병 연구 등에 중요하게 쓰이고 있어요.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