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왜 중동에선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날까? 유럽인이 일률적으로 국경 그었기 때문
입력 : 2025.05.19 03:30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김미선 옮김|출판사 사이|가격 2만원
팀 마샬 지음|김미선 옮김|출판사 사이|가격 2만원
우리는 한반도에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지리적 조건입니다. 이 조건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지요. 그런데 이 조건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국제정치 및 안보 측면에서 지리적 조건은 지정학(地政學)이라고 합니다. 한반도 북쪽과 서쪽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고 가까운 바다 건너엔 일본이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맞서는 곳이라고도 하지요.
저자는 다양한 국제분쟁 지역을 현장에서 취재해온 기자입니다. 이 책은 세계를 10개 지역으로 나누고, 지리적 조건에 따라 전개됐던 역사와 오늘날의 현실을 조명하지요. 우리나라에 관한 부분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한반도엔 지리적인 '천연 장벽'이 없기에 지금까지도 강대국들의 경유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나라가 북쪽에서 침략해 오면 압록강을 넘은 뒤 다시 해상으로 진출할 수 있고, 바다에서 상륙해도 육지로 진입하는 데 큰 장애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이 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과거 몽골이나 청나라, 일본 등이 침입해 오는 등 수세기에 걸쳐 정복과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잡하지 않은 한반도의 지형 때문에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렇게 지리적 조건이 불리함에도 우리가 오늘날 이 정도 번영을 일군 것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더욱 치밀하게 외교 정책을 펼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중국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이제껏 중국은 변변한 해군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광활한 땅덩어리와 긴 국경선, 그리고 짧은 바닷길로 주변 국가와 통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해양 세력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 중국은 항공모함 등 강력한 해군력을 갖춘 해양 강국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국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바닷길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중동은 왜 분쟁이 끊이지 않고 벌어질까요? 저자는 20세기 초·중반 유럽인들이 인위적으로 그은 국경선 때문에 중동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종교와 민족이 다른 사람들을 한데 모아 임의적으로 국가를 만들고 국경을 정하니 오늘날 중동 지역의 유혈 사태가 계속된다는 것이지요.
어떤 주제에 대해 공부할 때는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공부할 때가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지도부터 찾아보세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특성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가 잊고 사는 '지리의 힘'에 관한 질문입니다. 저자는 "지리를 알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