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고사성어] 왕이 "직접 간언하면 큰 상 주겠다"고 하자… 왕궁 문 앞이 시장처럼 북적였죠

입력 : 2025.05.13 03:30

문전성시(門前成市)

[뉴스 고사성어] 왕이 "직접 간언하면 큰 상 주겠다"고 하자… 왕궁 문 앞이 시장처럼 북적였죠
최근 한 통신사가 해킹을 당해 가입자들의 개인 정보 유출이 우려되고 있어요. 이에 본인 정보가 담긴 유심을 교체하려고 매장을 찾는 가입자가 많습니다. 이렇게 가게나 집 앞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을 문전성시(門前成市)라고 합니다. 문 앞[門前]에 몰려온 사람이 많아서 마치 시장 같다[成市]는 뜻입니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전국 시대를 다룬 '전국책'에 실려있는데, 뜻밖에도 한 미남(美男)에게서 유래했습니다.

미남의 이름은 추기(鄒忌)였고 춘추전국시대의 제(齊)나라 사람이었습니다. 제나라에는 추기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미남 서공(徐公)이 있었어요. 어느 날 추기는 아내와 첩, 친구에게 서공과 자신 중에 누가 더 잘생겼는지 물어보았는데, 세 사람 모두 추기가 더 잘생겼다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정말일까' 의구심이 든 추기는 직접 서공을 찾아가서 얼굴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서공이 훨씬 잘생겨 보였어요. 집으로 돌아온 추기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세 사람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라면서요.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첩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친구는 내게 부탁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기는 한 집안에서조차 각자의 의도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데, 만일 한 나라로 확대해 본다면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곧장 왕을 찾아갑니다. 추기는 왕에게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입에 발린 칭찬을 멀리하고 뼈아픈 충고와 비판을 받아들여서 나라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왕은 추기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앞으로 나에게 직접 간언하는 자에게는 상등(上等)의 상을, 상소를 올려 간언하는 자에게는 중등(中等)의 상을, 거리에서 나를 비판하여 내 귀에 들리게 하는 자에게는 하등(下等)의 상을 내리겠다." 왕의 면전에서 하는 비판은 어렵고, 멀리서 하는 비판은 쉽기 때문이었죠.

왕령이 발표되자 왕궁의 문 앞엔 간언을 하러 온 사람들이 시장처럼 가득 찼고, 상소도 물밀듯이 몰려왔습니다. 왕은 그중 합당한 의견은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했고 결국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죠. 대문 앞에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의 쓴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개선의 시작이었던 것이지요.

유사한 표현으로 장사진(長蛇陣)이란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길게 늘어선 모양이 마치 긴 뱀[長蛇]과 같다는 말입니다. 장사진은 고대 전쟁에서 사용된 전술 중 하나예요. 장사진 외에도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의 학익진(鶴翼陣), 뒤에 강물이 있어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필사의 각오로 임할 수밖에 없는 배수진(背水陣), 거북이 등딱지 모양에 착안한 팔괘진(八卦陣)이 있지요.


채미현 박사·연세대 중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