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파라오 정면·옆면 한 그림에… 신체 특징 정확히 남겼죠
입력 : 2025.05.12 03:30
고대 이집트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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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1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네페르 티아베트의 석비'(기원전 26세기 추정). 머리와 다리는 측면을, 상체와 눈은 정면을 그렸어요. 이는 고대 이집트 회화의 대표적 표현 방식으로, 파라오 또한 이렇게 그렸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는 옆에서 봤을 때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뾰족한 삼각형이에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이지요. 쿠푸 왕의 피라미드에는 평균 무게 2.5t의 돌덩이가 230만 개 들어가 있습니다. 포장된 도로도 없고, 중장비도 없던 시절에 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겨 들어 올리고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았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이 건축물 하나를 짓는 데 10만 명이 필요했다고 주장하지요. 수많은 일꾼이 수십 년 동안 땀 흘린 성과가 바로 피라미드입니다.
이런 기자의 유적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몰입형 전시 '쿠푸 왕의 피라미드-고대 이집트로의 여행'이 9월까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가상현실(VR) 기구를 머리에 쓰면 몇 초 만에 피라미드 입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피라미드 중심부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사진3〉에서처럼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있습니다. 이 전시는 미국 하버드대 이집트학 교수가 참여해, 실제 피라미드에 대한 문헌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해요. 오늘은 가상현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피라미드와 관련한 고대 이집트인의 의례와 예술에 대해 알아볼까요?
파라오의 장례 의식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에도 고귀한 생명의 힘을 뜻하는 '카(Ka)'는 영원히 살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후에 펼쳐질 새 삶을 대비해 무덤을 만들었어요. 파라오가 죽으면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처리해 미라로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 몇 달이 걸렸습니다. 내장은 빼서 용기에 따로 보관하고, 심장은 몸 안에 남겨두었어요.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데 가장 중요한 부위가 심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엔 시신을 천연 재료로 만든 소금 방부제에 40일 동안 담그고, 마지막에는 천으로 둘둘 말았어요. 마지막으로 장례용 가면을 파라오의 얼굴에 씌우고, 석재 관에 넣은 후 돌로 된 방에 안치했습니다.
〈사진4〉에서 보듯, 전시 관람자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기다란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사원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쿠푸 왕의 시신을 미라로 처리하는 의식을 보고, 장례식에도 참석하게 돼요. '태양의 바지선'이라 불리는 이 배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 주위에 매립되어 있었습니다. 1954년에 발견돼 현재는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요. '태양의 바지선'은 부활한 파라오를 태양신 '라(Ra)'와 함께 하늘로 모시고 갈 때 쓰는 의례용 배로 알려져 있어요. 방부 처리된 파라오의 시신을 운반하는 장례용 배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문자와 그림의 예술가들
고대 이집트의 조각품이나 벽화에는 문자가 함께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는 문자와 그림의 관계가 긴밀했습니다. 말을 받아 적어 기록하는 '서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지요. 서기는 문서 작성뿐 아니라 벽화나 조각에 들어갈 그림 작업을 병행하기도 했죠.
이처럼 그림과 문자가 함께 쓰인 이집트 미술은 한동안 의미를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와도 같았습니다. 이 미술의 숨겨진 의미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대 이집트의 문자 체계인 상형문자가 해독된 이후부터죠. 이는 1799년 이집트 로제타 지역에서 발견된 '로제타석'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 돌은 고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칙령을 담은 것으로, 세 가지 서로 다른 문자 체계로 동일한 내용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집트 상형문자, 둘째 이집트 민중문자, 셋째 고대 그리스어였습니다. 이 중 그리스어는 18~19세기 유럽 학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언어였기 때문에 앞의 두 문자 체계를 비교하며 해석하는 열쇠가 되었지요.
조각상, 영혼의 안식처
〈사진2〉는 쿠푸 왕의 아들 카프레 왕의 조각상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조각상이 파라오의 영혼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안식처라고 믿었습니다. 이집트어에서 조각가를 일컫는 말은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조각상은 섬록암이라는 짙은 녹색의 단단한 돌로 만들었습니다. 카프레 왕은 왕좌에 꼿꼿하게 앉아 있어요. 파라오의 영혼이 깃들기 전까지 고요히 기다리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죠. 왕의 어깨 뒤에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신이 있는데, 하늘의 신이자 파라오를 수호하는 신인 호루스는 양 날개로 그를 감싸며 보호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됐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쿠푸 왕의 딸로 추정되는 네페르티아베트 공주가 그려진 석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1〉에 보이는 네페르티아베트는 표범 가죽옷을 걸쳤어요. 카프레 왕의 조각상처럼 공주 역시 의자에 앉아 있지요.
그림 속 네페르티아베트의 자세는 특이합니다. 다리는 옆모습으로, 몸통은 정면으로, 얼굴은 옆면으로 되어 있지만 눈은 정면을 향한 모습입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훗날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의 이미지를 찾을 때, 다른 사람과 혼동하지 않도록 얼굴과 몸의 주요 특징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해석됩니다. 눈이나 어깨 너비 같은 특징은 옆면만 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고대 이집트 미술은 기억과 인식을 중시한 표현이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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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2 -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카프레 왕의 좌상'(기원전 26세기 추정). 고대 이집트에선 조각상에 영혼이 머문다고 믿었죠.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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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3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 전시에선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마치 피라미드 위에 올라선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사진은 가상 이미지입니다. /Excu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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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4 - '쿠푸 왕의 피라미드' 전시에서 VR 기기를 착용한 관람자들이 고대 이집트 배를 타고 사원으로 가는 체험을 하는 가상 이미지. /Excurio